애창시(84)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1979) 김광규(1941 ~ )
4·19가 나던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리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 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시인 김광규)
서울특별시 출생
소속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데뷔1975년 문학과 지성 등단
1975년 《문학과 지성》을 통해 등단하였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독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독문과에서 문학석사,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세부전공은 독일 현대시문학이다. 시집으로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반달곰에게》,《아니다 그렇지 않다》,《크낙산의 마음》 등이 있다. 녹원문학상, 오늘의 작가상, 김수영 문학상, 이산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한양대학교 독문과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명예교수로 있다.
(해설)
이 시는 4·19세대의 좌절과 절망을 노래한 4·19세대의 만가(輓歌)이다. 김광규(67) 시인은 한글로 교육을 받은 첫 세대로 4·19가 일어난 1960년에 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이 시를 4·19혁명 18년 뒤에 썼다. 중남미 보컬그룹이 불러 1960년대 초반 크게 유행했던 노래와 동명의 제목이다.
터놓고 말하는 이 시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하다. 변해버린 세상과 변해버린 사람들의 살풍경, 온데간데없는 열망과 초심(初心), 터럭만큼의 부끄러움조차 없게 된 양심, 판치는 속물주의와 물질주의. 이것을 시인은 부지불식간에 빠져들게 된 깊숙한 ‘늪‘이라고 부른다. 크게 호통을 치지 않는데도 이 시를 읽고 나면 뭉근하게 가슴이 저민다. 왜 그런가.
우리는 점점 어깨가 움츠러들고 왜소화되어 간다. “작아진다/ 자꾸만 작아진다/(…)/ 모두가 장사를 해 돈 벌 생각을 하며 작아지고/ 들리지 않는 명령에 귀 기울이며 작아지고/ 제복처럼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작아지고/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며 작아지고/ 수많은 모임을 갖고 박수를 치며 작아지고/ 권력의 점심을 얻어먹고 이를 쑤시며 작아지고/ 배가 나와 열심히 골프를 치며 작아지고/ 칵테일 파티에 가서 양주를 마시며 작아지고/ 이제는 너무 커진 아내를 안으며 작아진다“(〈작은 사내들〉) 시인은 어느덧 소시민이 되어버린 우리에게 입장 없음과 순순히 따름이 정녕 우리들이 고대한 초상이었느냐며 정직한 질문을 던진다. 면구스럽다.
독문학자이기도 한 김광규 시인은 일상시(日常詩)의 영역을 새롭게 개척한 시인이다. “김광규의 시는 그 생각에 비뚤어짐이 없으며 그 어조에 격렬한 부르짖음이 없으며 그 은유에 현란한 모호성이 없고 그 관심이 소박한 일상을 넘어서지 아니한다.”(문학평론가 이남호)
김광규 시인 스스로도 자신의 시는 오페라에 있어서의 레치타티보(서창)쯤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그의 시는 아리아처럼 목청을 높여 외치지는 않는다. 다만 낮게 중얼중얼거릴 뿐. 하지만 이 중얼거림은 살기 바쁜, 살기 위해서 살아가는, 배불리 먹는 일에 열중인 우리들을 거북하게 만든다. 마치 맨발로 사금파리를 밟은 듯하게. 일례로, 그는 우리를 ‘4월의 가로수‘에 섬뜩하게 빗댄다. 우리의 모습이 “팔다리까지 잘려/ 봄바람 불어도 움직일 수 없고/ 토르소처럼 몸통만 남아“(〈4월의 가로수〉) 있는 수양버들이라니! 그러나 둘러댈 말이 없다.
4·19혁명 기념일이 다가오면 이 시를 다시 읽게 된다. 까슬까슬하게 카랑카랑하게 살자고 다짐하면서. – 문태준·시인
(참고문헌)
–일간『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84』(조선일보 연재, 2008)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문학과지성사. 1979 )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現代試選集『70年代젊은詩人들』(文學世界史,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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