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갑오개혁(1894년)
1차 갑오개혁은 군국기무처의 이름으로 시행했던 개혁의 내용을 말한다.
이 시기의 내각을 제1차 김홍집 내각이라 한다.
1. 내용
- 궁내부 설치와 의정부의 6조를 8아문으로 고치는 관제와 직무 개편 작업
- 궁내부를 설치한 것은 왕실이 의정부 업무에 관여하지 못하게 하여 왕권의 약화를 노린 것이다.
- 의정부의 6조를 8아문으로 고치면서 의정부의 3정승제를 폐하고, 총리대신 1명만 두는 체제로 변경하였다.
- 8아문은 지방을 담당하는 내무 아문, 외교를 담당하는 외무 아문, 재정을 담당하는 탁지 아문, 사법을 담당하는 법무 아문, 교육을 담당하는 학무 아문, 토목 공사를 담당하는 공무 아문, 군사를 담당하는 군무 아문, 농업 상업과 같은 산업 전반을 담당하는 농상 아문으로 구성되었다.
- 개국 기년 사용, 문벌 폐지, 연좌제 폐지, 조혼 금지, 과부의 재가 허용,
- 신분제 철폐
- 개국 기년 사용은 청나라의 영향력을 완전히 없애려는 일본의 영향력이 반영된 사안이다.
- 대체적으로 해당 개혁은 유교 구습에 대한 폐지가 대부분이다.
- 전주화약의 반영이라는 것이 대부분 이 부류이다.
- 조세의 금납제 시행
- 그동안 쌀, 콩, 무명 베 등으로 내던 조세를 모두 돈으로 내게 하였다.
- 외국 화폐로 조세를 지불하는 것도 허용했다. 이건 일본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일본 화폐를 조선 내에서 유통시키는 것을 용이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 도량형 통일, 은본위 화폐제 시행
- 도량형을 통일시켰다.
- 신식 화폐 발행 장정을 통해 은본위 화폐제를 시행하려고 하였다.
- 과거 제도를 폐지시키고 새로운 인재 등용 제도를 시행하였다.
- 전고국 조례를 통해 전고국에서 각 부, 아문을 통해 추천한 인재를 시험을 보게 하였다.
- 선거 조례를 통해 각 부, 아문에서 인재를 추천하게 하였고, 학교 설립도 종용하였다.
- 과거 제도 폐지와 직무 개편으로 규장각 기능이 대폭 축소되어 궁내부 소속으로 변한다. 이후 규장원으로 개칭.
- 경무청을 설치하였다.
- 근대적 경찰 제도를 처음으로 실시하게 된다.
- ‘경무청관제직장‘은 최초의 경찰조직법으로, 경찰을 경무청으로 일원화하면서 포도청이 폐지된다.
- 최초의 경찰작용법인 ‘행정경찰장정‘이 제정되었는데, 여기에는 경무관에게 즉결 처분권을 부여하고 있다.
- 기존 군제를 폐지하였다.
-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면서 폐지한 장위영 등의 친군영과 사관학교 역할을 하던 육영공원과 통제영 학당은 물론 각 도에 설치되었던 병영과 수영, 진과 보까지 전부 폐지되었다. 대신 훈련대와 시위대를 설치하였다.
2차 갑오개혁
일본이 청일 전쟁에서 사실상 승리하자 본격적으로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기 시작했다. 특히 당시 일본 공사로 부임하고 있었던 이노우에 가오루가 20개의 조항을 내세웠다. 그 내용은 대체적으로 흥선대원군의 실각, 왕실과 정사의 분리, 조세의 탁지 아문으로의 통일, 지방관의 권한 제한 등이 있다.
결국 그동안 얼굴 마담으로 내세웠던 흥선대원군이 실각당하고, 동학농민군이 우금치 전투에서 패배하자 일본의 요구에 맞춰서 칙령 제1호부터 제8호까지 발표되고, 갑신정변으로 일본에 망명가 있었던 박영효가 내무 대신으로 전격 임명되면서 2차 갑오개혁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를 ‘제2차 김홍집 – 박영효 연립 내각‘ 시기라 부르기도 한다.
개혁을 펼치기에 앞서 가장 먼저 ‘홍범 14조‘를 발표하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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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이노우에 가오루가 요구했던 20개 조항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내용 이다. 이를 통해 일본의 요구가 확실하게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개혁을 시행하였다.
5.1. 내용
- 의정부의 명칭을 내각으로 고쳤다.
- 이후 내각 관제를 발표하여 내각의 업무를 강화시켰다.
- 기존의 8아문을 7부로 고쳤다. 7부는 각각 외부, 내부, 탁지부, 군부, 법부, 학부, 농상공부이다.
- 재판소를 설치하였다.
- 이후에 법부 관제를 통해 법부에 고등 재판소를 설치하였고, 법관 양성소를 설치하여 전문 법관을 양성하게 된다.
- 왕실의 존칭을 격상시켰다.
- 기존의 주상 전하에서 대군주 폐하로 바꿨고, 왕비 전하에서 왕후 폐하로, 세자 저하에서 태자 전하로, 세자빈 저하에서 태자비 전하로, 왕대비 전하를 왕태후 폐하로 각각 바꿨다.
- 1차갑오개혁으로 입헌군주정 비슷해진 것에 비해서, 호칭의 격만 올렸는데 이는 ‘청과의 대등한 관계‘라고 공표한 것처럼 전통적 사대관계가 끝났음을 알리는 의미라고 봐야 할 것이다.
- 한성 사범 학교를 설치하고, 외국어 학교도 설치하였다.
- 전국 광역행정구역을 8도에서 23부로 개편하였다.
6. 을미개혁 (1995년)
청일전쟁 이후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동아시아 최대 무역항인 다렌을 일본이 양도받자 삼국 간섭이 일어나 일본은 다렌을 러시아에 양도하였다, 국내에서도 친일파가 실각하고 친미/친러 내각이 수립되는데 이것이 ‘3차 김홍집 내각‘이다. 이에 상황을 반전시키고자 일본은 을미사변을 일으켰고, 다시 친일파가 새 내각을 조각하는데 이것이 바로 ‘4차 김홍집 내각‘이다.
이 내각은 을미개혁이라고 부르는 조처를 실시하는데, 단발령 등을 밀어붙이면서 을미의병이 일어났고, 고종은 일본의 주의가 분산된 틈을 타 아관파천하여 내각은 붕괴하고 개혁은 파기된다.
7. 의의
조선시대 500년동안 이어진 각종 제도와 관습을 시대 변화에 따라 바꾸고 노비 제도가 없어지는 등 신분 제도도 사실상 철폐되었다. 다만 실제 인식은 차이가 거의 없었으며 그나마 젊은 노비들은 해방된 뒤 도시 등으로 일자리를 찾아 나섰지만 대부분의 노비들은 자신이 주인으로 모시던 집에서 신분만 머슴으로 바뀐 채로 법적인 제재를 피하기 위한 최소한의 봉급을 받아가며 이전과 똑같이 험한 일을 했으며 대우 역시 노비와 큰 차이가 없었다. 나이든 노비나 자녀가 있는 노비가 반발하면 과거에는 팼지만 이제는 그냥 해고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시골 등지에서는 어지간히 초대형 사고를 치지 않는 이상은 법보다는 유력자가 더 힘이 강했던 것도 사실이다.
당시 양반들에게 최고로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던 조치는 다름아닌 과거제의 폐지였다. 그래서 과거 준비에 여념이 없었던 젊은 유생들이나 그 부모를 정신적 혼란에 빠뜨렸다. 당시 막 성인이 되었던 이승만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과거제 폐지로 정신적 혼란을 일으킨 자신과 자기 아버지의 모습을 상세히 적어두고 있는데, 이승만의 아버지는 과거제의 폐지 소식을 듣자 손바닥으로 방바닥과 책상을 치고 자기 무릎까지 치면서 일본과 개화파를 욕했다고 하며, 이승만은 자서전에 “이 조치는 전국 방방곡곡에 묻혀 있던 야망적인 청년들의 고귀한 꿈을 산산이 부수는 조치였다.”고 쓰기도 했다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이 인식할만한 변화는, 전국 광역행정구역이 8도에서 23부를 거쳐 다시 광무개혁으로 13도로 변한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광역자치단체 영역과 명칭은 이 시기의 도에 광역시와 특별시 등을 더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일본세력을 배경으로 민씨 정권을 몰아낸 개화당의 김홍집 혁신 내각이 개혁정신을 명문화한 <홍범 14조>를 1894년(고종 31) 12월에 제정, 고종으로 하여금 종실·백관(百官) 등을 거느리고 종묘에 나가 이를 서약케 하고 선포했다. 이로써 조선은 고려 충렬왕 이래 오랫동안 사용하지 못했던 짐(朕)·폐하·태자 등의 왕실 용어를 되찾고, 독립국가의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청에 의존하는 생각을 끊고 자주독립의 기초를 세운다.
②왕실전범을 제정하여 왕위계승은 왕족만이 하고 왕족과 친척과의 구별을 명확히 한다.
③임금은 각 대신과 의논하여 정사를 행하고, 종실·외척의 정치관여는 용납하지 않는다.
④왕실사무와 국정사무를 나누어 서로 혼동하지 않는다.
⑤의정부와 각 아문(衙門)의 직무·권한을 명백히 규정한다.
⑥납세는 모두 법으로 정하고 함부로 세금을 거두지 못한다.
⑦조세의 징수와 경비지출은 모두 탁지아문에서 관장한다.
⑧왕실의 경비는 솔선하여 절약하고, 이로써 각 아문과 지방관의 모범이 되게 한다.
⑨왕실과 관부(官府)의 1년회계를 예정하여 재정의 기초를 확립한다.
⑩지방관제를 개정하여 지방관리의 직권을 제한한다.
⑪우수한 젊은이를 외국에 보내 학술·기예를 익히도록 한다.
⑫장교를 교육하고 징병제를 실시하여 군제의 기초를 확립한다.
⑬민법·형법을 제정하여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
⑭문벌을 가리지 않고 널리 인재를 뽑아 쓴다.
[네이버 지식백과] 홍범 14조 [洪範十四條]
(한국근현대사사전, 2005. 9. 10. 한국사사전편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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