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여행 : <18> 병원 장례식장 문화
Q: 60대 남성 K는 수많은 조문을 다녀왔지만, 병원 장례식장에 들어설 때마다 늘 생경하다. 며칠 전 쾌차를 빌며 찾았던 ‘병실’의 기억이 가시기도 전에, 같은 건물 지하의 ‘빈소’에서 영정 속 지인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몇 개 층을 사이에 두고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속도감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과거에는 집에서 고인이 마지막을 맞고 마당에서 온 동네가 북적이며 장례를 치렀다. 왜 지금 우리는 삶의 끝자락을 병원에 온전히 맡기게 되었을까.
A: 병원 장례식장이 장례 문화의 중심이 된 배경에는 현대 사회의 구조적 변화와 공간의 한계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우리의 주거 형태는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빠르게 재편되었다. 수직으로 밀집된 공동주택 구조는 시신을 안치하고 문상객을 맞이하기에 공간적으로 협소할 뿐만 아니라, 이웃의 눈치와 소음 문제 때문에 죽음을 집 안으로 들이는 것을 ”금기시’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가문이나 마을 공동체가 도맡던 장례의 노동력을 더 이상 자급자족할 수 없게 되자, 그 빈자리를 자본과 시스템을 갖춘 병원이 채우게 된다. 1990년대 중반 의료법 개정으로 병원 내 장례식장 설치가 양성화되면서 ‘임종-안치-장례’가 한 건물에서 이루어지는 수직적 효율성은 현대인의 필요와 완벽히 맞물리게 되었다.
하지만 매끄러운 효율성 뒤에는 ‘죽음의 소외’와 ‘상업화’라는 그늘이 짙게 깔려 있다. 장례식장은 죽음을 철저히 ‘위생적 관리의 대상’으로 치부한다. 유족은 슬픔을 추스를 새도 없이 상담실에서 수의의 재질, 관의 등급, 제단 꽃장식의 규모를 선택해야 한다. 고인에 대한 예우가 자본의 논리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 속에서, 애도는 어느덧 ‘규격화된 서비스’로 전락했다.
게다가 병원이라는 공간은 ‘회복을 기대하던 기억’과 ‘작별’이 한 건물에서 겹치기 때문에, 유족에게는 유난히 냉정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가족은 임종 직후 병원에만 머물기보다, 상황에 따라 전문 장례식장으로 옮겨 보다 차분한 분위기에서 이별을 준비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병원 장례식장이 늘 상업적이라는 뜻도, 전문 장례식장이 더 낫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우리에게 맞는 요건’을 먼저 정하지 않으면, 장소가 결정을 대신해 버린다.
장례식장 선택의 비교 기준은 명확하다. △동선(이동 부담·화장장/장지 예약) △운영 유연성(가족장·작은 장례·기간 조정 가능 여부) △비용 구조(빈소 사용료와 음식·접객, 장의용품과 인력 서비스)다. 병원 동선은 ‘원스톱’ 편의가 크고, 전문 장례식장은 장례 전용 설계로 분위기와 운영 방식이 유연한 경우가 있다. 선택의 핵심은 ‘어디가 더 낫나’가 아니라 ‘우리 가족이 무엇을 우선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해외에서는 ‘시설’보다 ‘고인의 정체성과 장소의 서사’를 앞세우는 흐름이 눈에 띈다. 호주의 ‘피카루나(Picaluna)’ 같은 서비스 혁신기업은 전형적 장례식장을 운영하지 않는다. 대신 고인이 좋아하던 서핑 해변, 뒤뜰(Backyard)이나 단골 펍(Pub)을 일시적인 장례 공간으로 바꾼다. 격식이 있는 검은 정장 대신 고인이 응원하던 팀 유니폼을 입고, 맥주 한 잔을 곁들여 추억을 나누는 방식이다.
네덜란드에서도 장례를 반드시 전용 시설에서 치러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깬 ‘로카티에(Locatie)’ 문화가 있다. 고인이 생전에 사랑했던 미술관, 단골 카페, 혹은 숲속의 작은 레스토랑 등 일상의 공간을 추모의 성소로 전환하는 문화다. 1991년 장례법 개정을 통해 장소 선택의 자율권을 확보한 네덜란드인들은 차가운 병원 대신 고인의 유작이 걸린 미술관 로비나 바람 소리가 들리는 숲속 카페에서 와인과 음악을 곁들인 ‘마지막 축제’를 열게 되었다. 여기에는 죽음을 고인이 살았던 방식대로 떠나보낸다는 철학이 스며있다. 죽음을 ‘관리’가 아니라 ‘관계의 이야기’로 되돌리려는 노력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 번지는 가족장과 작은 장례의 확산은 규모를 줄이고 허례허식을 없애는 것을 넘어, 고인과의 관계에 집중하려는 ‘애도의 주권’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종교적 의례나 획일적 절차 대신, 고인이 평소 좋아하던 음악을 틀고 가족들이 돌아가며 추모 편지를 읽거나, 생전 영상과 사진을 보며 대화를 나누는 등 ‘스토리’ 있는 이별 예식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죽음은 시설에 맡겨 처리할 사건이 아니라, 고인이 살아온 방식과 남은 이들이 만나는 삶의 마지막 조각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화려한 빈소가 아니라, 임종 직후라도 고인의 온기를 느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최소한의 여유, 그리고 병원이든 전문 장례식장이든 그 안에서 우리 방식으로 이별할 수 있는 유연함이다. 죽음을 삶의 중심으로 불러들이는 용기는, 죽음을 온전한 삶의 조각으로 품어낼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치유의 시작이다.
(한국일보-이정선 교수 글 옮김) 편집인(편집부2000hansol@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