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 이모저모(2)

안락사의 유형


안락사는 생존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시행된다. 환자의 요청에 따라 의료진이 약물이나 주사를 환자에게 투여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적극적 안락사’와 의료진이 환자에게 의학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거나 산소호흡기 등 인위적인 생명 연장 장치를 제거하는 ‘소극적 안락사’로 나뉜다. 환자가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직접 약물이나 주사를 투여하는 ‘조력 자살’도 안락사에 포함된다. 안락사를 허용하는 국가에선 의료진이 엄격한 검진과 가이드라인을 통해 안락사가 필요한 환자인지를 판단한다.

자살을 불경시하는 가톨릭 보수주의가 강한 편인 유럽 국가들은 안락사에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안락사를 허용하면 생명 존엄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장애인이나 취약계층 환자들이 안락사를 선택하도록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불치병의 고통에서 벗어나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인간의 기본권으로 보는 시각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스위스와 함께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페인 오스트리아가 조력 자살을 합법화했다. 이 가운데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페인 등 4곳은 조력 자살은 물론이고 적극적 안락사까지 허용한다. 소극적 안락사만 법적으로 허용하는 곳은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프랑스 등이다. 소극적 안락사는 유럽 외에서도 인정하는 곳이 많아서 보통 안락사 논쟁은 조력 자살과 적극적 안락사에 집중된다.

대표적으로 네덜란드는 2002년 4월 세계에서 처음으로 안락사를 합법화했다.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정신적 고통도 안락사를 허용할 근거로 인정하고 있다. 그 대신 환자는 개선될 가망이 없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낀다는 점과 대안이 없다는 사실을 의사에게 수차례 설명해 승인을 받아야 한다.

네덜란드는 현재 12세 이상에게 안락사를 허용하는데 이 중 15세 이하에게는 부모나 법적 보호자에게 동의를 요구한다. 1세 이하 영아는 의사와 부모 동의를 받아 제한적으로 안락사를 할 수 있다. 네덜란드 당국은 14일 한 걸음 더 나아가 “1∼12세 불치병 아동에 대한 안락사를 허용하도록 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고통스러워하는 어린이들을 위한 안락사도 필요하다는 의사들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벨기에는 성인 안락사의 경우 네덜란드에 뒤이어 받아들였지만 아동 안락사는 일찍이 2014년부터 합법화했다. 고통이 극심하고, 회복 가능성이 없는 중병 및 불치병 아동에게 한정된다. 자녀가 요청하고 부모 모두 동의해야 한다.

● ‘인구 70%가 가톨릭’ 스페인도 안락사

인구 70%가량이 가톨릭 신자인 스페인에선 안락사 반대 여론이 강했지만 ‘라몬 삼페드로’ 사건이 안락사 논쟁을 뜨겁게 지폈다. 스페인 선원이자 작가였던 삼페드로는 1968년 25세 나이에 바다에서 다이빙을 하다가 목이 부러져 몸 전체가 마비됐다. 스스로 짧은 거리조차 이동할 수 없는 고통으로 괴로워하던 그는 ‘영원한 자유’를 원한다며 안락사를 결정했다.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는 스페인 법정에서 약 30년을 다투던 그는 결국 1998년 친구인 라모나 마네이로의 도움을 받아 생을 마감했다.

당시 마네이로는 체포됐지만 증거 부족으로 풀려났고, 공소시효가 만료된 뒤에 비로소 ‘내가 삼페드로에게 독극물을 줬다’고 시인해 파장을 낳았다. 이 사연을 다룬 영화 ‘씨 인사이드’는 2005년 제62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제7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각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바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안락사에 대한 치열한 논쟁을 이어오던 스페인은 2021년 3월 안락사를 합법화해 이목을 끌었다. 가톨릭 국가로서는 안락사를 급진적으로 받아들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제 스페인에선 간병인이 환자의 요청에 따라 안락사를 도울 수 있다. 다만 환자는 심각하고 만성적인 고통이나 치료가 불가능한 질병을 앓고 있다는 게 확인되어야 한다.

스페인 국적의 환자이거나 스페인에 1년 이상 합법적으로 거주한 성인일 경우 안락사를 의사에게 신청할 수 있다. 의사 결정 능력이 있는 상태여야 하고 안락사에 앞서 고통을 경감할 방법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도 대안이 없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안락사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신청자는 10일간의 숙고 기간에 의료진의 조언과 전문가로 구성된 평가위원회와의 논의를 거친다. 이 와중에 네 차례에 걸쳐 자신의 안락사 결정을 재확인해야 한다.

 

편집인(편집부2000hans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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