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伊·포르투갈은 “생명 존엄 중요” 금지
가톨릭 국가 스페인까지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빗장을 풀었지만 스페인처럼 가톨릭의 영향력이 강한 이탈리아는 여전히 안락사를 금지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선 2021년 안락사 합법화를 추진한 한 시민단체가 시민 100만 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 국민투표 청원서를 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심리 끝에 국민투표 청원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해 안락사 합법화가 무산됐다. 헌재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보다 ‘생명 존엄성’이 더 중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포르투갈에선 의회가 안락사 합법화 법안을 두 차례나 통과시켰지만 번번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합법화의 길이 막혔다. 안락사나 안락사 허용 대상인 ‘말기 환자’ 개념이 모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현지 언론에 따르면 포르투갈에서 안락사 합법화에 찬성하는 여론은 절반을 넘고 있다.
최근 들어 안락사 논쟁을 적극 꺼내든 건 프랑스다. 프랑스에선 지난해 영화계 거장인 장뤼크 고다르 감독이 스위스 롤르의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력 자살을 했다고 알려지면서 안락사 논쟁이 뜨거워졌다. 고다르 감독은 생전에 다수의 불치성 질환을 앓고 있었다.
이날 프랑스 엘리제궁(대통령실)은 홈페이지에 성명을 내 ‘죽음을 선택할 권리’에 대한 국가 차원의 토론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시민 자문기구를 설립해 의료 종사자들과 안락사 제도에 대한 주요 쟁점을 토론하기 시작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연금개혁 입법으로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이달 초 시민 자문기구인 ‘184 프랑스 시민들’을 만나 “삶을 끝내는 프랑스식 모델을 담은 법안을 여름이 지나기 전까지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이 기구는 안락사 합법화를 정부에 권고했다.
프랑스는 2005년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를 도입했지만 약물 등으로 사망에 이르게 돕는 적극적 안락사는 불법이다. 정부가 법안을 제출하더라도 의회에서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좌파 진영과 일부 중도파는 안락사에 찬성하지만 우파는 반대하는 편이다.
● 안락사의 대안 ‘완화 치료’
안락사를 반대하는 이들은 안락사에 앞서 진정제 투여 등으로 환자의 고통을 완화하는 완화 의료와 호스피스 제도부터 우선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임종할 때 고통을 완화하는 의료적 서비스는 실제 미흡한 편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세계에서 완화 치료가 필요한 환자 10명 가운데 1명꼴로만 완화 치료를 받고 있다. WHO는 2021년 10월 ‘양질의 의료 서비스 및 완화 치료’란 보고서를 통해 각국 정부가 완화 치료를 1차 진료센터(PHC)에서 제공하는 등 보건 시스템 전반에 적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2021년 싱가포르국립대 의대의 ‘사망 및 임종의 질에 대한 전문가 평가(A∼F등급)’에 따르면 세계 81개국 중 상위권인 A등급을 받은 국가는 영국 아일랜드 대만 코스타리카 한국 호주 등 6곳에 불과했다.
프랑스는 2005년부터 난치병 환자의 임종 절차를 규제하는 법을 마련해 완화 의료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소생이 힘들 것으로 예상되고 큰 고통을 겪고 있는 말기 환자는 죽음에 이를 때까지 진정제를 받을 수 있다. 의료진은 완화 의료를 시행할 필요가 있는지를 엄격하게 따진다. 엄격한 조건을 충족하는 환자는 수분 및 영양 공급을 비롯해 기존 치료를 중단하고 진통제를 맡는다. 이 완화 의료는 병원은 물론이고 환자의 집에서도 할 수 있다.
프랑스는 2016년 법을 개정해 환자가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할 수 없을 때에 대비해 완화 치료 의사를 미리 밝히는 ‘사전 완화 의료 지시서’ 작성 방침을 강화했다. 이 지시서에는 환자의 이름, 성, 날짜 및 출생지, 서명이 명시돼야 한다. 환자가 의사 표현이 불가능한 상태일 때 자신을 대신해 의사를 밝힐 성인을 지정할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 2월 발간한 ‘임종 관리를 개선할 때’란 보고서에서 “임종 관리 서비스에 접근하기 힘들고 이를 접할 기회가 불평등한 경우가 많아 임종 당일이나 마지막 몇 달간 수준 이하의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며 “국가가 임종 돌봄 정책을 더 중요한 의제로 삼아 포괄적인 정책을 구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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