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창시(19)
겨울 바다<1967> 김남조<1927 ~ >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버리고
허무의 불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바다에 섰었네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데 하소서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김남조 시인]
김남조의 작품은 지속적으로 이러한 기독교적 정조를 짙게 깔고 있으며 모윤숙(毛允淑)‧노천명(盧天命)의 뒤를 이어 1960년대 여류시인의 계보를 마련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27년 9월 25일 경북 대구 출생. 일본 규슈(九州)에서 여학교를 마쳤고, 1951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였다. 마산고교, 이화여고에서 교편을 잡은 후 성균관대학교와 서울대학교 강사를 거쳐 1955년부터 1993년까지 숙명여대 교수를 역임하였다. 한국시인협회 회장,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다.
1950년 대학 재학시절 『연합신문』에 시 「성수(星宿)」, 「잔상(殘像)」 등을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1953년 첫 시집 『목숨』을 발간하면서 본격적인 시작활동에 들어갔는데, 이후의 시 「황혼」, 「낙일」, 「만가」 등과 더불어 이 시기의 작품들은 인간성에 대한 확신과 왕성한 생명력을 통한 정열의 구현을 소화해 내고 있다. 특히 『목숨』은 가톨릭 계율의 경건성과 뜨거운 인간적 목소리가 완전하게 조화된 시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제2시집 『나아드의 향유』로 이어지면서 종교적 신념이 한층 더 강조되고 기독교적 인간애와 윤리의식을 전면에 드러내게 된다. 이후의 시들 대부분이 지속적으로 이러한 기독교적 정조를 짙게 깔고 있으며 후기로 갈수록 더욱 심화된 신앙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정열의 표출보다는 한껏 내면화된 기독교적 심연 가운데에서 절제와 인고를 배우며 자아를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시집 『정념의 기』(1960), 『풍림의 음악』(1963), 『잠시, 그리고 영원히』(1965), 『김남조 시집』(1967) 등을 발간하면서 왕성한 창작력을 보여주었다. 모윤숙(毛允淑)‧노천명(盧天命)의 뒤를 이어 1960년대 여성 시인의 계보를 마련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후에도 『평안을 위하여』(1995), 『외롭거든 나의 사랑이소서』(1997), 『희망학습』(시와시학사, 1998), 『사랑 후에 남은 사랑』(1999), 『영혼과 가슴』(2004), 『가난한 이름에게』(2005), 『귀중한 오늘』(2007) 등의 시집을 간행한 김남조는 비교적 다작(多作)하는 시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목숨』(1953), 『나아드의 향유』(1955), 『나무와 바람』(1958), 『정념의 기』(1960), 『풍림의 음악』(1963), 『겨울 바다』(1967), 『설일』(1971), 『영혼과 빵』(1973), 『사랑초서』(1974), 『동행』(1976), 『빛과 고요』(1982), 『시로 쓴 김대건 신부』(1983), 『마음의 마음』(1983), 『눈물과 땀과 향유』(1984), 『너를 위하여』(1985), 『저무는 날에』(1985), 『말하지 않은 말』(1986), 『문 앞에 계신 손님』(1986), 『둘의 마음에 산울림이』(1986), 『고독보다 깊은 사랑』(1986), 『겨울나무』(1987), 『새벽보다 먼저』(1988), 『바람세례』(1988), 『깨어나소서 주여』(1988), 『겨울꽃』(1990), 『가슴을 적시는 비』(1991), 『겨울사랑』(1993), 『평안을 위하여』(1995), 『외롭거든 나의 사랑이소서』(1997), 『희망학습』(1998), 『사랑초서와 촛불』(2003), 『영혼과 가슴』(2004), 『가난한 이름에게』(2005), 『귀중한 오늘』(2007) 등이 있다.
시선집 『김남조시집』(1967), 『김남조 육필시선』(1975), 『김남조 시선』(1984), 『가난한 이름에게』(1991), 『김남조 시 99선』 등이 있다. 2005년 국학자료원에서 『김남조 시전집』를 발간했다. 이밖에도 산문집으로 『잠시 그리고 영원히』(1964), 『은은한 환희』(1965), 『그래도 못다한 말』(1966), 『달과 해 사이』(1967), 『시간의 은모래』(1968), 『여럿이서 혼자서』(1972), 『그대들 눈부신 설목같이』(1975), 『이브의 천형』(1976), 『만남을 위하여』(1977), 『그대 사랑 앞에』(1978), 『기억하라 아침의 약속을』(1979), 『그 이름에게』(1980), 『바람에게 주는 말』(1981), 『그가 네 영혼을 부르거든』(1985), 『먼데서 오는 새벽』(1986), 『사랑을 어찌 말로 다하랴』(1986), 『가슴 안의 그 하나』(1987), 『끝나는 고통 끝이 없는 사랑』(1990), 『마지막 편지』(1996), 『사랑 후에 남은 사랑』(1999) 등이 있다.
1992년 제33회 3·1문화상, 1996년 제41회 대한민국예술원 문학부문 예술원상, 2007년 제11회 만해대상 문학부문상 등을 받았고, 1993년 국민훈장 모란장과 1998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해설]
기도하는 사람을 본 적 있다. 새벽 교회당 구석에서, 간절히 내뻗은 자신의 두 손을 부여잡고 고개를 떨군 채였다. 소리 없이 일렁이는 가파른 등에서 겨울 바다 냄새가 났다. 지난밤 내내 뚝 끊긴 생의 절벽 앞에 서 있다 온 사람의 등이었다. 인간은 기도할 줄 아는 사람과 기도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구분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구나 가슴에 새를 품고 산다, 미지라는 한 마리 새를. 삶에 대한 자신의 의지 혹은 희망을 우리는 그렇게 부르는 것이리라. 그 새를 잊지 않고 간직한 사람은 미지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자이다. 그러나 미래의 새를 잃어버린 사람은 ‘겨울 바다’ 앞에 서기도 한다. 그곳은 절망의 끝 혹은 허무의 끝일 것이다.
보고 싶던 미지의 새들은 죽어 있고 매운 바닷바람에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버린, 허무라는 마음의 불(心火)로 불붙은 겨울 바다. 그 죽음의 공간에서 시인은 시간의 힘을 깨닫는다. 시간은 모든 걸 해결해 준다는 말도, 세월이 약이라는 말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우리를 맑게 깨우치고 우리를 키우는 건 세상을 항해 ‘끄덕이게’ 하는 보이지 않는 시간이다.
기도는 시간을 견뎌내는 데서 비롯된다.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해달라는 심혼(心魂)의 기도는, 저 차디찬 바다를 수직으로 관통하는 ‘인고의 물기둥’을 세우는 일이었으리라. ‘허무의 불’을 ‘인고의 물’로 버텨내는 것이야말로 시간의 힘이고 기도의 힘이다.
김남조(80) 시인은 기도하는 시인이다. 팔순을 맞이하여 어언 60여 년의 시력(詩歷)으로 간구해온 그의 시편들은 사랑과 생명과 구원으로 충만한 기도들이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 삶은 언제나/ 은총(恩寵)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사랑도 매양/ 섭리(攝理)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설일(雪日)’)를 낭독하는, 떨리는 듯한 그러나 결기 있는. 시인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참고문헌]
– 김남조[金南祚]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19]
– (『겨울 바다』. 상아출판사. 1967 : 『김남조 전집』. 국학자료원. 2005)
–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