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창시(2)
풀<1974> 김수영(1921~1968)
풀이 눕는다.
비를 모아 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시인]
김수영(1921~1968년) 시인은 1921년 11월 27일 서울 종로구 관철동 158번지에서 아버지 김태욱과 어머니 안형순의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집터는 현제 ‘파고다 어학원’ 건물이 들어서 있으며, 생가를 알려주는 표지석이 대로변에 서 있다. 김수영 시인의 선대는 경기 북부와 홍천 등에 많은 토지를 소유했고, 소작인들에게 매년 500석 이상을 받아온 부유층이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많은 토지를 빼앗겼고, 김수영이 태어날 무렵에는 부친이 종로에서 종이장사를 하고 있었다.
김수영은 유치원과 서당을 거쳐 이의동 공립보통학교(효재초등학교)를 다녔다. 초등학교 때 성적은 우수 했지만, 폐렴과 뇌막염으로 결석이 많아 선린상업학교 야간부에 입학했다. 선린상업학교 전수부를 졸업하고 본과(주간) 2학년으로 진학하여, 영어 주산 미술 등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선린상업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미즈시니 하루키(水品春樹)연극 연구소’에서 수업을 받기도 했다.(1942년)

1943년에는 가족과 함께 길림성(지린성)으로 이주했다. 1944년에는 조선, 중국, 일본이 참가하고 ‘길림성 예능협회’가 주최하는 ‘춘계 예능대회’ 가 있었다. 김수영은 이 대회에 올릴 작품(연극)을 준비 하고 있던 ‘길림극예술연구회’ 소속 임헌태, 오해석등을 만나서 연극에 몰두했다. 1945년 조국이 해방되자 김수영 가족들은 그 해 9월, 길림역에서 평안북도 개천과 평양을 거쳐 서울에 도착했다.
1946년 조연현이 주도하고 곽종원, 조지훈, 이한직 등이 참여한 예술부락 3월호(통권 3권 발행)에 시「묘정의 노래」를 발표하며 연극에서 문학으로 예술 장르를 전환했다. 예술부락은 해방공간에서 벌어졌던 이념과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배제한 순수문학과 민족문학의 토대가 되는 문학지를 지향했다.
[해설]
‘풀’과 ‘바람’의 반복적인 구조와 효음(效音)을 제외하고 문맥상으로는 어떠한 메시지도 전달받지 못한다. 단순히 ‘눕다’·‘일어나다’·‘울다’·‘웃다’라는 4개의 동사가 반복되어 시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을 뿐이다.
시의 핵심어인 ‘풀’과 ‘바람’의 상징성의 해석에 대하여 어떤 이는 ‘풀’을 가난하고 억눌려 사는 민중의 상징이고, ‘바람’은 민중을 억누르는 지배세력의 상징으로 보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이는 이를 부정하고 포괄적으로 생(生)의 깊이와 관련된 어떠한 감동을 맛보게 하는 상징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작자인 김수영의 강렬한 현실의식과 저항정신이 뿌리 박힌 참여파 시인의 전위적(前衛的) 역할을 감안하여 보면, 오히려 전자의 해석이 온당할 것 같다. 처음에는 바람에 의하여 풀이 누웠다가 일어나지만, 나중에는 바람보다 먼저 풀이 누웠다가 일어나는 현상을 볼 수가 있는데,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연에서는 ‘풀’이 눕고 울다가 또 눕는 것은 흐린 날 비를 몰아오는 ‘바람’ 때문이라 하고 있다. 어두운 현실에서 억눌리며 사는 민중의 삶을 ‘풀’에다 비유한 것이다.
둘째 연에서는 ‘풀’이 ‘바람’보다 먼저 눕고 울고 일어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바, 이는 지배세력에 눌려 사는 민중의 굴욕적인 삶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셋째 연에서도 날은 흐리고 ‘풀’이 눕고 일어나고 웃고 우는 것이 바람과는 무관하게 엇갈린 모순율(矛盾律)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풀’이 발밑까지 눕는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가난하고 억눌린 민중이 발밑까지 짓밟힌다는 것으로,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을 ‘풀’의 이미지를 매개로 하여 노래하고 있다.
[참고문헌]
– 김수영시인 문학관 탐방|수산
– 『거대한 뿌리』. 민음사. 1974:『김수영 전집』. 민음사. 1981-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일간『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2』(2008. 01. 02, 조선일보)- 『한국현대시의 이해』(신경림·정희성, 진문출판사, 1981)
– [네이버 지식백과] 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