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창시(20)
삽(2007) 정진규(1939 ~ 2017)
삽이란 발음이, 소리가 요즘은 들어 겁나게 좋다 삽,
땅을 여는 연장인데 왜 이토록 입술 얌전하게 다물어
소리를 거두어들이는 것일까? 속내가 있다. 삽,
거칠지가 않구나 좋구나 아주 잘 드는 소리,
그러면서도 한군데로 모아지는 소리,
한 자정(子正)에 네 속으로 그렇게 지나가는 소리가 난다.
이 삽 한 자루로 너를 파고자 했다.
내 무덤 하나 짓고자 했다 했으나 왜 아직도 여기인가. 삽,
젖은 먼지 내 나는 내 곳간,
구석에 기대 서 있는 작달막한 삽 한 자 루 ,
닦기는 내가 늘 빛나게 닦아서 녹슬지 않았다.
오달지게 한번 써볼 작정이다. 삽,
오늘도 나를 염(殮)하며 마른 볏짚으로 한나절 너를 문질렀다

[정진규 시인]
1939년 10월 19일 경기도 안성 출생.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나팔서정」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시집 『마른 수수깡의 평화』(1965), 『유한의 빗장』(1971), 『들판의 비인 집이로다』(1977), 『매달려 있음의 세상』(1979), 『비어있음의 충만』(1983), 『연필로 쓰기』(1984), 『뼈에 대하여』(1986),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1990), 『몸시』(1994), 『알시』(1997), 『도둑이 다녀가셨다』(2000), 『질문과 과녁』(2003), 『본색』(2004) 등을 발간하였다. 한국시인협회상(1980), 월탄문학상(1985), 현대시학작품상(1987) 등을 수상하였다. 그의 초기시는 화려하고 섬세한 언어적 수사와 자아의식의 심층에 대한 탐닉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같은 시적 추구는 시가 언어에 의해 쓰여진다는 인식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 그는 196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시적인 것과 일상적인 것의 괴리를 경험하면서 심각한 내적 갈등을 겪는다. 「시의 애매함에 대하여」나 「시의 정직함에 대하여」와 같은 시론은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적인 것에 대한 탐닉과 일상적인 삶의 건강성 사이의 평형이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들판의 비인 집이로다』 이후, 그의 시는 산문을 도입하기 시작하면서 개인의식에서 집단의식으로 이행하는 계기를 얻게 된다. 이것이 견실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의 시는 자기확인의 과정을 담게 된다.
「연필로 쓰기」의 향그러움과 더불어 시련을 견디는 연습이야말로 확고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하여 반드시 치러야 할 통과제의라고 할 수 있다. 그 통과제의를 지나 「뼈에 대하여」에 이르면 이승의 군더더기살을 버리고 마침내 뼈로만 남아 있으려는 정신적 극기의 자세를 담게 된다. 「연필로 쓰기」와 「뼈에 대하여」는 유려한 산문시를 보여주는데, 이 산문의 형식이란 시인의 정신적 각성을 이끌어 가는 계기이며 깨달음의 도도한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해설]
시인은 언어의 맨살을 만진다. 말과의 상면과 말의 ‘한 줄금 소나기’를 만나는 순간의 경이를 시인은 표현한다. 우리의 마음에서 세상에 대한 경이가 사라지는 일은 슬픈 일이다.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혀를 대보고 생각을 만드는 이 날것의 감각에서 소위 맛이 사라지면 살맛이 가실 것이니 이 세상은 얼마나 캄캄한 절망이겠는가. 이 세상을 다시 맞는 아침에는 당신도 “아, 세상이 맛있다!”라고 말해 보라. 애초에 생(生)에는 무력감이 없으므로.
시 ‘삽’에는 경이가 있다. 나도 ‘삽’을 발음해 본다. 입술이 모시조개처럼 예쁘게 모인다. 손으로 목화를 따들이는 느낌이 있다. 시인은 이 발성의 쾌감에 희열한다. 그리고 거기서 좀 더 들어간다. “젖은 먼지 내 나는 내 곳간”에 작달막한 삽 한 자루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여준다. 언젠가 제대로 한 번 써볼 생각으로 연일 ‘마른 볏짚으로’ 문질러 놓아 녹슬지도 않았다. (나도 나의 아버지가 들일을 마친 해질 무렵에 마른 볏짚으로 삽날을 문지르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 저녁 풍경의 숙연함이여!)
시인은 무슨 일에 이 삽을 사용하려 하는 것일까. 당신의 사랑을 얻을 때에 한 번 뜨고, 종국에 닥칠 나의 죽음을 내 스스로 거두어들일 때 한 번 뜨겠다고 한다. 생의 한 경이를 포착한 이 시가 참 좋은 이유는 시 전반부의 발성의 쾌감이 후반부의 비장함으로 진행되는 데에 있다. 비장하지만 마구 심각하지는 않다. 다가올 시간에 대한 기다림이 있기 때문이다. 이 또한 경이다. 경이가 없다면 기다림도 없을 것이므로. (연애에 경이가 사라지는 순간 우리의 애인들이 내일을 기다리지 않고 당장 모두 떠나가 버리는 것처럼)
시 전문지 월간 ‘현대시학’의 주간을 맡고 있는 정진규(69) 시인은 산문시의 성공적인 전형을 제시하고 있는 시인이다. 그의 산문시는 영혼을 한순간에 탁, 부려 놓는다. 그리하여 산문시 아닌 시들보다 오히려 더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낸다. 시 쓰는 일을 비유하길 세상을 배알하는 일이라고 겸손하게 말하는 그는 올해로 칠순을 맞았다. 그의 시는 종심(從心)이되 어긋남이 없으니 무량무변하다.
[참고문헌]
– 정진규 [鄭鎭圭]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 일간『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20』(조선일보 연재,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