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창시(24)
산문(山門)에 기대어(1975) 송수권(1940 ~ 2016)
누이야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날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淨淨)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 가면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오던 것을
더러는 물 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
그리고 산다화 한 가지 꺾어 스스럼없이
건네이던 것을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날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두고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그렇게 만나는 것을누이야 아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눈썹 두어 낱이
지금 이 못물 속에 비쳐옴

(송수권 시인)
송수권의 시는 재래의 무력하고 자조적인 한의 정서가 아니라 한 속에 내재한 은근하고 무게있는 남성적인 힘을 강조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1940년 3월 15일 전남 고흥 태생. 순천사범학교를 거쳐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다. 문공부예술상, 금호문화재단 예술상, 전라남도문화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해설)
그의 시는 재래의 무력하고 자조적인 한의 정서가 아니라 한 속에 내재한 은근하고 무게있는 남성적인 힘을 강조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또한 남도의 토속어가 가진 특유의 맛과 멋을 무리없이 살리는 데 성공하였으며, 역사 의식을 매개로 한 민족 재생의 의지를 담은 작품들도 많이 발표했다
송수권 [宋秀權]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참고문헌)
1975년 『문학사상』에 시 「산문(山門)에 기대어」가 신인상으로 당선되어 문단에 등장한 이후, 시집 『산문에 기대어』(1980), 『꿈꾸는 섬』(1982), 『아도(啞陶)』(1984), 『새야 새야 파랑새야』(1986), 『우리들의 땅』(1988), 『자다가도 그대 생각하면 웃는다』(1991), 『별밤지기』(1992), 『들꽃세상』(1999), 『초록의 감옥』(1999), 『파천무』(2001), 『언 땅에 조선매화 한 그루 심고』(2005), 『시골길 또는 술통』(2007) 등을 간행하였다. 또한 산문집 『다시 산문에 기대어』(1985), 『사랑이 커다랗게 날개를 접고』(1989), 『남도 기행』(1990), 『쪽빛 세상』(1998), 『만다라의 바다』(2002) 등을 발간하였다.
–일간『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24』<1975년> (조선일보 연재, 2008)
(『산문에 기대어)』. 문학과지성사. 1980)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