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러히 잦아지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설어운 설흔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시인 김종길 사진 (네이버 이미지 검색에서 발췌)
(작가 김종길)
영문학자이면서도 고전적 소양에 시 세계의 근원을 둔 김종길은 시론 또한 고전적 안정성과 균형감각을 지니고 있어 학문적 성과를 뚜렷하게 하고 있다.
본명은 김치규(金致逵). 1926년 11월 5일 경북 안동 출생. 고려대 영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셰필드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였다.
한국시인협회장, 고려대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었다. 194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문」이 입선하여 등단한 이후 시인과 시론가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었다. 대개의 이미지스트들이 경박한 모더니티에서 머물고 마는 데 비하여 그의 시는 첫 시집 『성탄제』(1969)에서부터 고전적인 품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명징한 이미지와 고전적 품격에서 비롯되는 정신적 염결성은 그의 시적 특징이다. 그의 시는 조만간 사라질 유한한 것들의 아름다움이 구성하는 세계와 이 세계 속에 순간적으로 존재하는 자아라는 두 개의 축으로 이루어진다.
그는 세계와 자아의 대립적 긴장 가운데 균형을 유지하는 절제의 정신을 견지한다. 이러한 절제의 정신은 그의 고전적 품격의 기반이 되는 것으로서 시적 자아는 언제나 대상이나 감정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절제와 극기의 태도는 그의 시적 감수성 속에 한시적 전통, 혹은 유가적 정신이 자리잡고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 「신처사가(新處士歌)」나 「고고(孤高)」에는 세속에 처하면서도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고 초연한 태도를 견지하는 견인적 정신이 드러난다.
(해설)
이 시는 서른 살 중년 사내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성탄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성탄제의 상징인 ‘사랑‘의 의미만 차용하고 있을 뿐 실상은 한국의 전통적 복고적인 정서를 주조로 하고 있다.
이 시는 열 개의 연이 시간적 추이 과정에 따라 전개되고 있으며, 1∼6연의 유년 시절의 체험과 7∼10연의 어른이 된 화자의 체험,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그러면서도 4연과 6연은 그 시간적 전개에서 제외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시인이 ‘산수유 열매‘와 ‘눈‘을 대비시켜 시각적 이미지를 제시함으로써 어린 시절의 가장 인상적인 모습을 부각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고도의 시적 장치로 볼 수 있다.
어린 시절의 화자는 열병을 앓고 있었으며,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 붉은 산수유 열매‘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통해 병을 치유할 수 있었다. 어른으로서의 화자는 이제 어린 시절에 앓던 열병이 아니라 열병을 앓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 어린 시절 화자의 가슴에 서려 있던 열병이 지금에 와서는 그리움이 대신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구조적으로 열병과 그리움이 대칭적 관계를 갖게 된다. 또한,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은 ‘엄부자모(嚴父慈母)’로 대변되는 유교적 전통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한편, 차가운 옷자락만큼 아버지의 사랑이 깊고 뜨거움을 상징적으로 알려 주고 있다.
전반부의 시적 공간은 시골이며, 후반부의 공간은 도시이다. 시골의 방에는 ‘바알간 숯불‘이 피어 있고, 밖에선 ‘눈‘이 내리고 있다. 도시에도 역시 ‘눈‘이 내리고 있지만, 방이 제시되지 않는 대신 ‘내 혈액‘이라는 독특한 공간이 나타나 있다. ‘내 혈액‘과 ‘숯불‘은 동일한 붉은빛으로 서로 상관 관계를 가지며 시의 깊이를 더해 줌은 물론, 이러한 공간 구조는 ‘산수유 붉은 열매‘에 의해 내적 통일성을 얻게 된다.
이 시의 시간은 전·후반부 모두 ‘성탄제 가까운 밤‘이다. 성탄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는 축제이지만, 여기서는 성탄제의 그런 피상적 의미를 벗어나 화자와 아버지의 새로운 만남을 촉진시키고 조명하는 기능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성탄제는 서구의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축제로서의 의미가 아닌, 한국의 전통적·복고적 정서로 전이되어 인간의 보편적인 사랑의 정점을 보여 주는 한편, 그 분위기에 싸여 가족간의 사랑을 한 차원 상승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부자자효(父慈子孝)의 윤리관으로 대표되는 관습적인 차원을 뛰어넘어 한 차원 더 깊어진 애정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눈‘은 고요한 회상의 분위기와 함께 춥고 쓸쓸한 겨울 장면을 조성하는 기능을 갖는다. 또한, 그 눈을 헤치고 아버지가 따오신 ‘산수유 열매‘가 화자의 혈액 속에 녹아 흐른다는 것은 육친간의 순수하고도 근원적인 사랑이 늘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산수유 붉은 알알‘은 화자의 내부에 생명의 원소처럼 살아 있는 사랑의 상징이 됨으로써 거룩한 ‘성탄제‘의 본질적 의미를 환기시켜 주는 것이다.
(해설)
이 시는 서른 살 중년 사내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성탄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성탄제의 상징인 ‘사랑‘의 의미만 차용하고 있을 뿐 실상은 한국의 전통적 복고적인 정서를 주조로 하고 있다.
이 시는 열 개의 연이 시간적 추이 과정에 따라 전개되고 있으며, 1∼6연의 유년 시절의 체험과 7∼10연의 어른이 된 화자의 체험,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그러면서도 4연과 6연은 그 시간적 전개에서 제외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시인이 ‘산수유 열매‘와 ‘눈‘을 대비시켜 시각적 이미지를 제시함으로써 어린 시절의 가장 인상적인 모습을 부각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고도의 시적 장치로 볼 수 있다.
어린 시절의 화자는 열병을 앓고 있었으며,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 붉은 산수유 열매‘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통해 병을 치유할 수 있었다. 어른으로서의 화자는 이제 어린 시절에 앓던 열병이 아니라 열병을 앓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 어린 시절 화자의 가슴에 서려 있던 열병이 지금에 와서는 그리움이 대신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구조적으로 열병과 그리움이 대칭적 관계를 갖게 된다. 또한,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은 ‘엄부자모(嚴父慈母)’로 대변되는 유교적 전통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한편, 차가운 옷자락만큼 아버지의 사랑이 깊고 뜨거움을 상징적으로 알려 주고 있다.
전반부의 시적 공간은 시골이며, 후반부의 공간은 도시이다. 시골의 방에는 ‘바알간 숯불‘이 피어 있고, 밖에선 ‘눈‘이 내리고 있다. 도시에도 역시 ‘눈‘이 내리고 있지만, 방이 제시되지 않는 대신 ‘내 혈액‘이라는 독특한 공간이 나타나 있다. ‘내 혈액‘과 ‘숯불‘은 동일한 붉은빛으로 서로 상관 관계를 가지며 시의 깊이를 더해 줌은 물론, 이러한 공간 구조는 ‘산수유 붉은 열매‘에 의해 내적 통일성을 얻게 된다.
이 시의 시간은 전·후반부 모두 ‘성탄제 가까운 밤‘이다. 성탄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는 축제이지만, 여기서는 성탄제의 그런 피상적 의미를 벗어나 화자와 아버지의 새로운 만남을 촉진시키고 조명하는 기능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성탄제는 서구의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축제로서의 의미가 아닌, 한국의 전통적·복고적 정서로 전이되어 인간의 보편적인 사랑의 정점을 보여 주는 한편, 그 분위기에 싸여 가족간의 사랑을 한 차원 상승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부자자효(父慈子孝)의 윤리관으로 대표되는 관습적인 차원을 뛰어넘어 한 차원 더 깊어진 애정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눈‘은 고요한 회상의 분위기와 함께 춥고 쓸쓸한 겨울 장면을 조성하는 기능을 갖는다. 또한, 그 눈을 헤치고 아버지가 따오신 ‘산수유 열매‘가 화자의 혈액 속에 녹아 흐른다는 것은 육친간의 순수하고도 근원적인 사랑이 늘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산수유 붉은 알알‘은 화자의 내부에 생명의 원소처럼 살아 있는 사랑의 상징이 됨으로써 거룩한 ‘성탄제‘의 본질적 의미를 환기시켜 주는 것이다.
(참고문헌)
–『성탄제』(삼애사. 1969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