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흰 연꽃 열어 보이더니
다음엔 빈 손바닥만 푸르게 흔들더니
그 다음엔 더운 연밥 한 그릇 들고 서 있더니
이제는 마른 손목마저 꺾인 채
거꾸로 처박히고 말았네
수많은 창(槍)을 가슴에 꽂고 연못은
거대한 폐선처럼 가라앉고 있네
바닥에 처박혀 그는 무엇을 하나
말 건네려 해도
손 잡으려 해도 보이지 않네
발밑에 떨어진 밥알들 주워서
진흙 속에 심고 있는지 고개 들지 않네
백 년쯤 지나 다시 오면
그가 지은 연밥 한 그릇 얻어먹을 수 있으려나
그보다 일찍 오면 빈 손이라도 잡으려나
그보다 일찍 오면 흰 꽃도 볼 수 있으려나
회산에 회산이 다시 온다면
(시인 나희덕 사진) (네이버 image에서 발췌)
(작가 나희덕) 1966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그곳이 멀지 않다>,<어두워진다는 것>등을 발표했으며, 시론집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출간했다.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 시는 서른 살 중년 사내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성탄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성탄제의 상징인 ‘사랑‘의 의미만 차용하고 있을 뿐 실상은 한국의 전통적 복고적인 정서를 주조로 하고 있다.
(해설)
이 시는 서른 살 중년 사내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성탄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성탄제의 상징인 ‘사랑‘의 의미만 차용하고 있을 뿐 실상은 한국의 전통적 복고적인 정서를 주조로 하고 있다.
이 시는 열 개의 연이 시간적 추이 과정에 따라 전개되고 있으며, 1∼6연의 유년 시절의 체험과 7∼10연의 어른이 된 화자의 체험,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그러면서도 4연과 6연은 그 시간적 전개에서 제외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시인이 ‘산수유 열매‘와 ‘눈‘을 대비시켜 시각적 이미지를 제시함으로써 어린 시절의 가장 인상적인 모습을 부각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고도의 시적 장치로 볼 수 있다.
어린 시절의 화자는 열병을 앓고 있었으며,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 붉은 산수유 열매‘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통해 병을 치유할 수 있었다. 어른으로서의 화자는 이제 어린 시절에 앓던 열병이 아니라 열병을 앓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 어린 시절 화자의 가슴에 서려 있던 열병이 지금에 와서는 그리움이 대신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구조적으로 열병과 그리움이 대칭적 관계를 갖게 된다. 또한,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은 ‘엄부자모(嚴父慈母)’로 대변되는 유교적 전통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한편, 차가운 옷자락만큼 아버지의 사랑이 깊고 뜨거움을 상징적으로 알려 주고 있다.
전반부의 시적 공간은 시골이며, 후반부의 공간은 도시이다. 시골의 방에는 ‘바알간 숯불‘이 피어 있고, 밖에선 ‘눈‘이 내리고 있다. 도시에도 역시 ‘눈‘이 내리고 있지만, 방이 제시되지 않는 대신 ‘내 혈액‘이라는 독특한 공간이 나타나 있다. ‘내 혈액‘과 ‘숯불‘은 동일한 붉은빛으로 서로 상관 관계를 가지며 시의 깊이를 더해 줌은 물론, 이러한 공간 구조는 ‘산수유 붉은 열매‘에 의해 내적 통일성을 얻게 된다.
이 시의 시간은 전·후반부 모두 ‘성탄제 가까운 밤‘이다. 성탄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는 축제이지만, 여기서는 성탄제의 그런 피상적 의미를 벗어나 화자와 아버지의 새로운 만남을 촉진시키고 조명하는 기능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성탄제는 서구의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축제로서의 의미가 아닌, 한국의 전통적·복고적 정서로 전이되어 인간의 보편적인 사랑의 정점을 보여 주는 한편, 그 분위기에 싸여 가족간의 사랑을 한 차원 상승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부자자효(父慈子孝)의 윤리관으로 대표되는 관습적인 차원을 뛰어넘어 한 차원 더 깊어진 애정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눈‘은 고요한 회상의 분위기와 함께 춥고 쓸쓸한 겨울 장면을 조성하는 기능을 갖는다. 또한, 그 눈을 헤치고 아버지가 따오신 ‘산수유 열매‘가 화자의 혈액 속에 녹아 흐른다는 것은 육친간의 순수하고도 근원적인 사랑이 늘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산수유 붉은 알알‘은 화자의 내부에 생명의 원소처럼 살아 있는 사랑의 상징이 됨으로써 거룩한 ‘성탄제‘의 본질적 의미를 환기시켜 주는 것이다.
영문학자이면서도 고전적 소양에 시 세계의 근원을 둔 김종길은 시론 또한 고전적 안정성과 균형감각을 지니고 있어 학문적 성과를 뚜렷하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