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창시(31) 혼자 가는 먼 집<1992년> 허수경(1964 ~)  

애창시(31)

 

혼자 가는 먼 집<1992년>     허수경(1964 ~ )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과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시인 허수경 사진 (google image에서 발췌)

 

(작가 허수경)

  경상남도 진주 출신으로 경상대학교 국어국문학 학사독일 뮌스트대학교대학원 고대근동고고학 박사 이수, 1987년 실천문학에 <땡볕>을 발표하면서 작춤활동 시작. 2001년 제14회 동서문학상, 2016년 제6회 전숙희문학상 수상

(작품)

[]
「땡볕」 외『실천문학』, 1987.6, .
「원폭수첩 2」 외『세계의문학』, 1987.9, .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실천문학사, 1988, 시집.
「지리산 감나무」 외『실천문학』, 1988.4, .
「이 마을에도 눈이 익고」『월간중앙』, 1989.2, .
「망초꽃 사랑」 외『문학과 비평』, 1989.3, .
「자장노래 1」 외『창작과비평』, 1989.3, .
「여의도 엘레지 1-개그맨」 외『문학과사회』, 1989.9, .
「저자에서」『창작과비평』, 1989.9, .
「가을별초」 외『문학정신』, 1989.10, .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질꺼야』문학세계사, 1990, 시집.
『혼자 가는 먼 집』문학과지성사, 1992, 시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창작과비평사, 2001, 시집.
「빈 얼굴을 지닌 노인들만」 외 2『문학과사회』, 2004.여름.
「그래그래그 잎이」 외 4『한국문학』, 2004.가을.
「물 좀 가져다주어요」 외 2『문학동네』, 2004.겨울.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문학과지성사, 2005, 시집.

[소설]
『모래도시』문학동네, 1996, 장편.

[수필]
『길모퉁이의 중국식당』문학동네, 2003, 수필집.
『모래도시를 찾아서』현대문학, 2005, 수필집.

 허수경[許秀卿] (한국여성문인사전, 2006. 11. 28., 태학사)

 

(해설)

  ‘그대는 어떻게 당신이 되는가허수경(44) 시인은 그대라는 자연의 달이 나에게 기대 와 저를 부빌 때라고 한다. ‘사내가 아름다울 때그 아름다움에 기댈 수 있을 때 당신이 되기도 한다부빈다는 것기댄다는 것그것은 다정(多情)이고 병()이기도 할 것이다나는 병자처럼 당신을 묻은 마음의 무덤에 벌초하러 간다사실은 슬픔으로 이어진 살아옴의 상처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을 추억하며 한 병의 맨 술을 마시는 중이리라백수광부처럼 돌아올 수 없는 강을 훌쩍 건너가 버린 당신당신이 먼저 당도해버린 그곳은 나 또한 혼자서 가야 할 먼 집이다그러니 남겨진 나는 참혹할밖에.

참혹은 당신으로 상징되는 모든 것들이 불러일으키는 총체적 참혹이다사랑을 떠나 보낸 실연의 참혹아버지를 여읜 망부의 참혹신념을 잃은 한 시대의 참혹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고 무를 수도 없는죄다 마음에 묻어야 하는 당신들이다그런 당신을 웃으면서 울면서 혹은 취해서 부르는 이 시의 언어는 언어 이전이거나 언어 이후다단속적인 말줄임표와 쉼표어쩔 수 없이 새어 나오는 킥킥이라는 의성어에는참혹인 줄 알면서도 참혹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자의 내면풍경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나와 당신사랑의 마음과 마음의 무덤환후와 치병이 각각 따로이기에당신과 함께했던 세월과 사랑과 상처와 그 상처의 몸이 모두 적요이고 울음이다그런 울음을 짊어지고 가는 시인세간의 혼몽을 잘 먹고 잘 노래하는 시인이야말로 자신의 불우함을 다해 노래하는 시인의 지복(至福)일 터이 시는 그 지복의 한 자락을 걸쳐 입고 있다.


허수경 시인은 울음 같은비명 같은취생몽사 같은 시집 혼자 가는 먼 집을 낸 직후 독일로 휘리릭 날아가버렸다. 1990년대 초반이었고시인의 생부가 돌아가시고 난 직후였다동안(童顔)대책 없는 맨몸이었다고고학을 공부한다 했다잘살고 있다고 했다독일로 날아간 지 벌써 16년째다당신… 당신이라는 말은 언제 불러도 참 좋다그리고 참 참혹하다킥킥 당신….

 (참조문헌)
일간『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31(조선일보 연재, 2008)
일간『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46(조선일보 연재, 2008)
(『혼자 가는 먼 집』.문학과지성사. 1992)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편집부) 2000hans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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