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창시(32) 소(2005) 김기택(1957!)  

애창시(32)

 

 소 (2005)   김기택(1957~ )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움큼식 뽑혀나오도록 울어보지만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수천만 년 말을 가두어 두고
그저 끔벅거리고만 있는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
소는 여러 번 씹었던 풀줄기를 배에서 꺼내어
다시 씹어 짓이기고 삼켰다간 또 꺼내어 짓이긴다.

시인 김기택 사진 (google image에서 발췌) ​

 

(작가 김기택)

   김기택(51) 시인은 소에 관한 시를 네 편 썼다꾀는 파리를 쫓아내지도 못하는 무력한 소무게를 늘리기 위해 강제로 물을 먹인 소도살되는 순간 바람이 빠져 나가서 빈 쇠가죽 부대가 되어버린 소에 대해 썼다시집 의 표제작인 이 시는 소에 관한 그의 네 번째 시이다전작들이 소의 비극적인 몸에 관한 시라면 이 시는 소라는 종()의 역사를 바라보는 시인의 슬픈 시선이 있다한마디의 말도 사용할 줄 모르고 다만 울음이 유일한 언어인 소오직 끔벅거리고만 있는 소의 눈우리가 최초에는 가졌을 혹은 오히려 우리를 더 슬프게 내내 바라보았을 그 순하고 동그란 감옥인 눈당신에게 내뱉으면 눈물이 될 것 같아 속에 가두어 두고 수천만 년 동안 머뭇거린 나의 말….

김기택 시인의 시는 무섭도록 정밀한 관찰과 투시를 자랑한다그는 대상을 냉정하고도 빠끔히 묘사한다그는 하등동물의 도태된 본능을 그려내거나 사람의 망가진불구의 육체를 고집스럽게 그려냄으로써 역설적이게도 생명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던 생명의 원시림을 복원시켜 놓는다.

시 신생아 2’에서 아기를 안았던 팔에서아직도 아기 냄새가 난다아가미들이 숨쉬던 바닷물 냄새두 손 가득 양수 냄새가 난다// 하루종일 그 비린내로어지럽고 시끄러운 머리를 씻는다내 머리는 자궁이 된다아기가 들어와 종일 헤엄치며 논다라고 그는 노래했다이런 시를 한껏 들이쉬면 어지럽고 시끄럽던 머리가 맑아진다선홍빛 아가미가 어느새 새로 생겨난다.

 

(해설)

  쟁기와 써레와 달구지를 끌던 소두꺼운 혀로 억센 풀을 감아 뜯던 소송아지를 낳아 대학 공부를 시켜주던 소추운 날 아버지가 덕석을 입혀주던 소등을 긁어주면 한없이 유순해지던 소코뚜레가 꿰어 있는 소우시장에 팔려가는 아침에는 주먹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던 소….

소에게 들일이 점점 없어지면서 소의 쓸모는 이제 비육에만 있다지만 소만큼 오랫동안 농가를 살려온 짐승도 드물다일하러 갈 땐 강한 무릎으로 불끈 일어서던 소뿔이 솟아 있으나 뿔을 사용하는 일이 거의 없는 소소의 느린 걸음걸이와 큰 눈과 우직함을 생각해본다.

(참고문헌)

김기택 [金琪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한국학중앙연구원)

일간『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32(조선일보 연재, 2008)
―시집『소』(문학과지성사, 2005)
시선집『자연 속에서 읽는 한 편의 시 10(국립공원, 2007)

(편집부) 2000hans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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