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창시(33) 저녁의 염전(2007), 김경주(1976~)  

애창시(33)

 

저녁의 염전(2007)     김경주 (1976~ )

죽은 사람을 물가로 질질 끌고 가듯이

염전의 어둠은 온다

섬의 그늘들이 바람에 실려온다

물 안에 스며 있는 물고기들,

흰 눈이 수면에 번지고 있다

폐선의 유리창으로 비치는 물속의 어둠

선실 바닥엔 어린 갈매기들이 웅크렸던 얼룩,

비늘들을 벗고 있는 물의 저녁이 있다

멀리 상갓집 밤불에 구름이 쇄골을 비친다

밀물이 번지는 염전을 보러 오는 눈들은

저녁에 하얗게 증발한다

다친 말에 돌을 놓아

물속에 가라앉히고 온 사람처럼

여기서 화폭이 퍼지고 저 바람이 그려졌으리라

희디흰 물소리죽은 자들의 언어 같은,

빛도 닿지 않는 바다 속을 그 소리의 영혼이라 부르면 안 되나

노을이 물을 건너가는 것이 아니라 노을 속으로 물이 건너가는 것이다

몇천 년을 물속에서 울렁이던 쓴 빛들을 본다

물의 내장을 본다

 

 

(해설)
  바닷물을 끌어다가 삼일 정도 가둬두면 바닥에 소금 알갱이가 뭉치기 시작한다가만히 고인 바닷물이 제 안의 소금을 응결시키고 있는 저녁의 염전을 볼 때면 마음이 쓸쓸해지곤 한다스러지는 햇빛슬어가는 어둠남루한 생의 얼룩비늘 같은 욕망의 흔적서늘한 죽음의 그늘… 흩어져 있던 그리 어두컴컴한 것들이 가라앉곤 했던가.

흰 눈이 내리는가 싶더니 상갓집 밤불처럼 노을이 내리는 염전그곳에서 시인은 소금의 소리, ‘죽은 자들의 언어와 같은 그 희디흰 물소리를 듣는다그리고 소금의 빛그 몇천 년을 물속에서 울렁이던 쓴 빛을 본다소금의 근원인 빛도 닿지 않는 바다 속은 모든 생명의 시원이자 종말이다그러니까 존재의 끝과 시작을 듣고 보는 셈이다우리의 내장이 이리 어둡고 이리 쓴 이유일 것이다물의 내장이 그러하고생의 내장이 그러한 것처럼.

노을 속으로 바닷물이 건너는 염전에 서면죽음과 소멸을 견뎌내는 법을 배우는 것만 같다실리고스미고비치고번지고가라앉고퍼지는 술어의 움직임 속에서 하얗게 증발하는 허공 속 흰 눈같이아니 깊은 바다 속 소리의 영혼같이아니 아니 온갖 사랑이 밀려왔다 밀려간 사람 속 쓰디쓴 내장같이. “나 없는 변방에서 나오는 그 시간이 지금 내 영혼이다 나는 지금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부재중’)라는 그의 시 구절이 떠오른다

(작가 김경주)

  김경주(32) 시인은 젊다. 2003년에 등단하여 2007년에 첫 시집을 냈으니 시력 또한 젊다. 한 시인은 “이 무시무시한 시인의 등장은 한국 문학의 축복이자 저주다”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스무 살 이후, 이 대학 저 대학에서 이 공부 저 공부 하며 밥벌이를 위해 대필작가, 학원강사, 광고일, ‘야설’ 작가까지 했다는 기이한 이력이 인상적이었던가. 수려한 외모에 여행, 사진, 에세이, 영화, 연극을 넘나드는 전방위적 재능이 또 신인류(!)적이었던가.

  1976년 광주광역시 출신서강대학교 철학과 학사한국예술종학학교 대학원 음악창작협동과정 석사 대본및작사 전공, 2000년대 한국시의 재기 발랄함을 바탕으로 기존 문법의 철저한 파괴가 극적 테마를 따라가면서 도달할 수 있는 극한을 보여 주며문학연극음악을 넘나드는 거치ᅟᅡᆷ없는 활동력을 보여주고 있다.

(약력)

200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꽃 피는 공중전화>로 등단,

17회 오늘의 젊은 예술가산 문학부문 수상28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부문 수상.

시집으로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게절이다>, <시차의 눈을 달랜다>, 산문집으로 <Passport>,

<펄프 키드>등이 있다.

(참고문헌)
일간『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33(조선일보 연재, 2008)
시집『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 2007)

(편집부) 2000hans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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