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소백산맥 쪽을 Qje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어서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꽉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 본다.
모든 것이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文義)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시인 고은 사진 (google image에서 발췌)
(고은 시인)
1943
미룡국민학교 입학. 그해부터 조선어 교과과목이 폐지되어 일본어만으로 수업. 일본 이름 다까바야시 도라스께(高林虎助). 3학년 때 일본인 교장 아베(安部)가 장차 무엇이 되겠는가 하고 물었을 때 천황이 되겠다고 해서 그 때문에 천황모독죄의 퇴학처분을 간신히 넘기는 대신 3개월 동안 하루 3시간씩 썩은 보리에서 덜 썩은 보리를 가려내는 악취 속의 강제 작업을 했음.
1945
8·15해방으로 월반(越班), 단번에 동급생이 하급생이 되어서, 허약체질로 주눅이 든 처지에서 해방되었음.
해방 직후 새로 부임한 권모(權某) 교장이 친일파라 해서 교내 동맹휴학을 하는데 주모자의 하나로 되었음. 1년 뒤 신설된 군산 사범학교 입학시험에서는 성적은 단연 우수 했으나 동맹휴학사건 때문에 품행문제로 불합격 처분을 받고 다음해 군산중학교에 5백 명 중 수석으로 입학.
해방 직후에는 특히 반탁(反託) 동맹휴학, 단정(單政)반대 동맹 휴학을 즐기고, 새벽에 상급생의 지시에 의한 벽보 붙이기 심부름 등에 참가했음. 강 건너 장항 제련소의 굴뚝에서 늘 영원감(永遠感)을 체험함.
1950
6·25전쟁으로 4학년 휴학. 이때 한 마을의 선배 김기호와 함께 그는 효성(曉星) 나는 호성(湖星)이라는 호를 쓰며 시를 습작하기 시작했음. 자학증상이 깊었으며, 군산항에서 자살을 시도했으나 일본인 항해사가 건져 냈음. 화장도 하고 다녔음. 두 귀에 청산가리를 넣어서 고막이 녹았으나 하나는 구제.
1952
불교 승려가 됨. 법명(法名) 일초(一超). 효봉(曉峰)스님의 상좌가 된 이래 12년 동안 수선(修禪)과 만행(萬行). 목포 유달산 암굴의 거지대장 수제자가 되어 거지 의발(衣鉢)을 전수받음. 구걸 행각에 한동안 몰입.
1957
서울 선학원(禪學院)에 들어감. 불교 총무원 간부, 전등사 주지, 해인사 교무 및 주지 대리 등 역임.
《불교신문》을 이행원(崇山)과 함께 창간, 초대 주필이 되고 그 신문에 논설, 시문 등을 발표함.
1958
시 <폐결핵>을 친구인 나병재(羅丙哉)가 투고해서 조지훈 등의 천거로 한국시인협회 기관지 <현대시>에 발표되면서 시단에 나옴.
이어서 <봄밤의 말씀> <눈길> <천은사운泉隱寺韻> 등이 서정주의 단회(單回) 추천으로 발표되었음.
1959
첫 시집《불나비》40편의 시가 인쇄 도중 화재로 전소되어 작품을 다 잃었음.
해인사에서 단식 21일, 용맹정진의 수행이 잦았음.
1960
시집《피안감성彼岸感性》출간. 오상순(吳相淳)과 동숙. 전후문협(戰後文協) 결성에 참가.
1961
장편소설《피안앵彼岸櫻》출간.
《반야심경해의般若心經解義》《불교의 길》(선학원) 출간, 각각 등사본.
1962
한국일보에 환속선언을 발표하고 환속, 그동안 품수(稟受)한 대덕법계(大德法階)를 반환.
《세계전후문제작품집 – 한국전후문제시집》에 <고은집高銀集>을 수록. 구상(具常)과 친교.
1963-66
제주도 기류. 처음에는 제주해협에서 투신자살을 뜻했으나 만취한 상태에서 자살이 포기됨.
제주시 화북동에 도서관을 설치하고 금강고등공민학교를 개교, 교장 겸 국어 미술 교사로 있으면서 무료수업으로 3년간 1회 졸업생까지 배출.
장시 <니르바나> 발표. 시집《해변의 운문집》출간.
1967
서울행을 결심, 수필집《인간은 슬프려고 태어났다》, 시집《신, 언어의 마을》 출간.
민음사, 신구문화사의 편집실에서 생활.
1968
수필집《G선상의 노을》,《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출간.
한국 뮤지컬 대본 <한강>집필 – 예그린 악단의 공연 제목은<정이 흐르네>.
1969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절망의 메시지》 출간. 장시 <사형(死刑)>(大日蝕 改題).
동화통신 부장대우로 취임, 이것이 유일한 직장생활.
1970
단시집(短詩集)《세노야》출간.
노동자 전태일(全泰壹)의 분신자결로 현실을 인식하기 시작.
1971
연희동으로 이사. 수필집《한 시대가 가고 있다》 출간.
1972
《1950년대》제1권 출간. <노래의 사회사(社會史)>를 한국일보에 연재.
1973
《이중섭평전》을《신동아》에 연재, 출간(영화화). 중편《파계(破戒)》영화화.
1974
시집《문의文義마을에 가서》. 장편소설《일식日蝕》(영화화 됨)을 출간,《이상평전》을《세대》 에 연재, 출간. 장편소설《어린 나그네》를 《독서신문》에 연재, 출간.《고사편력(古寺遍歷)- 나의 방랑放浪 나의 산하山河》출간. 편역서 《당시선》, 《두시언해》 출간. 제1회 한국문학작가상 수상.
시집《입산(入山)》출간. 소설집《밤 주막》출간. 수필집
《세속의 길》출간. 오늘의 사상신서《역사와 더불어 비애와 더불어》출간. 장편소설 《피안앵》을 개작,《산산이 부서진 이름》으로 출간. 민주구국헌장사건 주모자로 약 1개월 동안 정보부의 지하실에 구속, 그 뒤로 송광사에 유폐당함. 《대화》에 장시 <대륙大陸> 연재.
1978
8·15를 맞아 유신체제에 대한 항의삭발. 이 무렵 <똥> <쪼까니 딸들에게> <열다섯 살의 노동자 바우에게> <전태일> <장준하> 등의 근로자 격려시를 각 집회에서 발표. 이 때문에 당국의 제재가 있었음.
산문집《사랑을 위하여》, 《가난한 이를 위하여》, 평론집《진실을 위하여》출간.
시집《새벽길》 출간.
1979
평론집《지평선으로 가는 고행苦行》출간. 《한국문학전집 – 고은집》 출간.
1980
계엄하에 작품발표 엄금됨. 소설집《산 너머 산 너머 벅찬 아픔이거라》출간. 5월 이후 내란음모죄, 계엄법, 계엄교사 죄목으로 조사, 재판. 문익환, 이문,영 예춘호 등과 육군교도소에 구속됨. 죽음 직전의 극한 상황 체험. 군법회의에서 20년 선고 받음.
1983
<조국의 별> <온돌>(세계의 문학) <4월혁명론> 발표. <함석헌 전집> 편집위원. 5월 5일 이상화와 결혼. 풍운의 독거생활을 끝냄. 식장은 수유동 안병무 교수 자택 정원. 주례 함석헌, 축도 문재린, 축시 문익환, 축사 이문영. 백낙청, 집전 리영희 교수 등으로 극히 제한된 친지 1 백여 명만을 초청함. 정보기관에서도 당일에야 알고 달려왔음. 아내는 결혼으로 대학 당국에서 면직 여부 대상이 되었으나 대학 담당 안기부 직원의 권고로 무사하게 넘어갔음.
1984
시집 《조국의 별》출간.
1985
서사시 <백두산>을 계간지《실천문학》에 연재하다가 강제 폐간당함. 월간 《마당》에 <겨레와 노래> <어린 시절>을 연재.
1986
<만인보(萬人譜)>를《세계의 문학》에 연재함. 전작으로 옮겨 1, 2권을 출간.《창작과비평》강제폐간 뒤 이름을《창작사》로 연명할 때였음. 시집 《전원시편》,《시여 날아가라》,《가야 할 사람》, 평론집《문학과 민족》출간. 산문집《고난의 꽃》출간.
1987
대하장편서사시《백두산》시작, 1, 2권 출간. <자유실천문인협의회>를 해체하고 <민족문학작가회의> 창립. 회장 김정한, 백낙청과 함께 부회장이 됨. 《만인보》3, 4, 5권. 출간.
<남북작가회담 추진위원회>위원장에 피선,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창립, 초대 공동의장 피선으로 의장 수락연설. 해방 이후 처음으로 진보적 예술인의 결집체가 이루어졌음.
《만인보》 7, 8, 9권. 산문집 《고은통신》, 《얼마나 나는 들에서 들로 헤매었던가》 출간.
고은 시선《아침이슬》영어판 출간. 시드니 TV 특집 프로 ‘한국시인 고은‘에서 대담 및 시낭독. 시집《어느 기념비》, 대하연작시《만인보》10, 11, 12권 출간.
1997
시집 《어느 기념비》,《만인보》13, 14, 15권 출간. 산문집《살아있는 광장에 서서》, 동시집《차령이 노래》, 동화책《나는 시골 삽살개에요》
1998
시집《속삭임》출간. <만해대상> 시부문상 수상.
정선 명예군민으로 추대됨.
1999
한국 뮤지컬 대본 <백범 김구>집필.
시집《머나먼 길》, 북한여행기《산하여, 나의 산하여》, 시평론《시가 있는 아침》, 소설《수미산》1, 2권 출간.
2000
시집《남과 북》,《히말라야 시편》출간.
2001
시집《순간의 꽃》, 수필집《길에는 먼저 간 사람의 자취가 있다》출간.
2002
백낙청 편 고은시선《어느 바람》출간.
전 38권의 《고은접집》출간 (김영사)
시집《두고 온 시》, 《늦은 노래》, 《젊은 그들》출간.
2004
《만인보》16-20권 출간.
2005
.장편 판소리 대본 <초혼(招魂)> 집필.
노르웨이의 유일한 문화훈장인 뵨슨 문화훈장 받음.
2006
《만인보》 21-23권. 시집 《부끄러움 가득》 출간.
2007
《만인보》 24-26권, 산문집《우주의 사투리》출간.
2008
시인 등단 50주년 기념 시집『허공』을 출판.하.
2009
『만인보』 마지막 4권 집필 완료.
시인 등단 50주년을 기념하는 시선집 『50년의 사춘기』(김형수편) 출간.
산문집 『개념의 숲』 과 『오늘도 걷는다』 출간.
이탈리아어 시선집 『노래섬』과 스페인어 시선집 『천년의 말라가』 출간.
2010
『만인보』의 마지막 4권을 출간하면서 1980년 감옥에서 구상한지 30년, 집필 을 시작한지 24년 만에 총 30권에 5600명의 이름을 올리면서 4001명을 노래한 대하 인물시집을 완성함.
『만인보』가 제 7회 광주비에날레의 주제로 선정되어 미국 『뉴욕 타임스』에 보도됨.
단국대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 수여.
2011
터키어판 시집 『만인보』와 『내일의 노래』가 수도 앙카라에서 출간됨.
영어판 『히말라야 시편』과 단시 모음집 『시간의 이쪽』이 LA와 뉴욕에서 각각 출간됨.
2012
두 권의 산문집 『두 세기의 달빛』과 『바람의 사상』 출간.
2013
. 『만인보』가 체코어로 프라하에서 출간. 607편의 시가 담긴 1,013면의 단행본 시집 『무제시편』(창비)을 출간, 영국 BBC 라디오(BBC Radio 4)의 제작팀이 내방하여 『만인보』 특집으로 ‘한국의 민중시인’이라는 특집 다큐를 제작하고 12월에 방송함.
2014
세계적인 화가 2인의 그림과 협업한 프랑스어 시화집 『매혹』이 프랑스 도서제작자에 의해 각12권 한정판으로 기획되어 니스 도서전에 출품됨.
그리스어판 선시집 『뭐냐』 출간.
공초문학상, 제1회 시와시학 대상 수상.
중국에서 출간한 『세계 현대시 110수』에 ‘나무의 앞’이 수록됨.
2015
심훈문학대상 수상.
『만인보』 11-20권에서 선하고 번역한 202편이 영국에서 『만인보: 평화와 전쟁』으로 출간됨. 프랑스에서 『순간의 꽃』과 『히말라야 시편』 출간. 스페인어 시선집 『죽은 시인들과의 시간』 출간. .남북공동 편찬위 이사장을 맡고 있는 〈겨레말 큰사전〉 회의를 위해 북한 금강산에 감.
고은의 예술을 지지하는 80여명의 발기인에 의해 〈고은재단〉 설립됨.
2016
중국어 번역 시선집 『봄날을 고이 묻었어라』와 『슬픔에는 거짓이 없다: 50년의 사춘기』 그리고 『히말라야 시편』이 베이징과 후난에서 각각 출간됨.
베트남어 『만인보』 출간.
루마니아의 부카레스트 국제시축제에 ‘주빈’으로 초대받아 루마니아어로 시선집 『죽은 시인들과의 시간』의 출판기념 단독 시낭송회 개최.
중국 항저우(杭州)에서 열린 국제시축제에 초대받아 시낭송회에 참석. 중국어로 출간된 『히말라야 시편』 출판 기념 세미나에 참석하고 시낭송을 함.
제 20회 슬로베니아 시축제 〈시와 포도주의 날들〉에 ‘주빈’으로 초대받아 시낭송과 인터뷰를 하고 슬로베니아어 시선집 『허공에 쓰다』의 출간 기념회를 가짐.
『무제시편』 이후 3년 만에 시집 『초혼(招魂)』
(해설)
문의(文義)는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에 있는 마을이지만 이 작품에서의 ‘문의’는 삶의 여러 양태가 죽음과 만나는 지점으로 상정하고 있어 구체적인 지역으로서의 의미보다 초월적이고 관념적인 공간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삶과 죽음의 통합은 시인의 의지만큼 쉽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시인은 여기에서 길들의 만남을 “가까스로 만나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 이유는 죽음 편에서 삶에게 요구하는 자세 혹은 무게의 기준치가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삶이 죽음 그 자체만큼이나 신성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때 아름다운 허무를 상징하는 ‘눈’에 의해 죽음이 덮이게 되고 죽음 역시 허무적이라는 사실에 이르자 죽음은 삶의 길과 그다지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 속의 “먼 산”은 가깝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동시에 시인은 ‘눈’에 대해서도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고 질문함으로써 삶의 허무함에 대해 그 해답을 유보해 두고 있다. 오히려 이러한 질문은 시인에게 초월적인 세계를 꿈꾸게 한 시와 언어의 유혹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로 읽히기도 한다.
(참고자료) –일간『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37』(조선일보 연재, 2008) –시집『문의(文義) 마을에 가서』(1974 수록)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