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떼 같은 사람은 잠 들고
침을 감춘 채
뜬소문도 잠 들고
담비들은 제 집으로
돌아와 있다
박꽃이 핀다
물소리가 물소리로 들린다
시인 신대철 사진 (google image에서 발췌)
(작가 신대철)
시인. 충남 홍성군(洪城郡) 오관리(五官里) 출생. 1968년 연세대학(延世大學) 국문과 졸업. 2005년 현재 국민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1968년 「강설(降雪)의 아침에서 해빙(解氷)의 저녁까지」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시단에 등장했다. 제4회 백석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무인도를 위하여>, <개마고원에서 온 친구에게> 등이 있다. 주요 작품으로 연작시(連作詩) 《풀과 인적(人跡)》 《자연수(自然水)》 《또 묘비(墓碑)를 세우며》 《방목(放牧)》 《채집일기(採集日氣)》 등이 있다.
(해설)
박꽃이 하얗게 필 동안 밤은 세 걸음 이상 물러나지 않는다 벌떼 같은 사람은 잠 들고 침을 감춘 채 뜬소문도 잠 들고 담비들은 제 집으로 돌아와 있다 박꽃이 핀다 물소리가 물소리로 들린다 <1977년> 꽃의 개화를 본 적이 있으신지. 그 잎잎의 열어젖힘을 본 적이 있으신지. 불교에서는 이 세상에서 최고의 일을 씨앗이 움트는 일이라고 했다지만, 꽃의 ‘열린 앉음새‘라 불러도 좋을 꽃의 개화는 사람을 압도한다. 대개 꽃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핀다.
이 시에서 사람을 ‘벌떼 같은 사람’이라고 비유한 부분은 압권이다. 정신없이 분주하고 시끌시끌 작당(作黨)하여 몰려다니며 입으로 바늘 같은 독설을 내뱉는 세간의 사람들을 잉잉거리는 벌떼 무리에 비유했다. 인간의 시간이 깊은 잠에 빠져들고 소란이 뚝 그쳤을 때 자연의 시간은 도래한다. 그리고 오, 하얀 박꽃은 피어난다. 물소리는 물소리로 들린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들린다.
자연의 시간에는 살기(殺氣)가 없다. 자연의 시간은 인간의 세계를 맑게 회복시킨다. 씻어낸다. 시 ‘무인도’에서 “인간을 만나고 온 바다,/ 물거품 버릴 데를 찾아 무인도(無人島)로 가고 있다”라고 했을 때의 무인도처럼. 하산(下山)한 당신도 ‘죄(罪) 짓지 않고’ 어슬렁어슬렁 자연의 시간에 살고 싶지 않으신지.
이 시는 ‘산(山)의 시인’이라고 불러도 좋을 신대철(63) 시인의 첫 시집 ‘무인도를 위하여’에 실려 있다. 신대철 시인은 1977년 첫 시집을 출간하고 23년간 절필을 했다. 2000년 시작 활동을 재개한 후 근년에는 알래스카, 시베리아 평원, 바이칼호, 몽골, 두만강 등 원시적이고 광활한 자연에 대한 시들을 발표하고 있다. 그곳에 정착하게 된 사람들의 이산의 역사와 고통을 부각시키면서. 신대철 시인은 북파 공작원 부대의 학군장교로 군복무를 했고, 그 당시의 기억을 토대로 전쟁과 남북 분단의 아픈 현대사를 시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충청도 청양의 깊은 산에서 화전민으로 살았던 그만의 체험은 붉은 혈액이 되어 신대철 시의 몸을 움직인다. 그의 시는 큰 산이요 큰 숲이다. 더 깊숙이 평화롭고, 깨금이 떨어지고, 아그배가 떨어지는 그런 곳. 당신도 가서 살고 싶지 않으신지.
(참고문헌)
–일간『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40』(조선일보 연재,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