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零下) 십삼도(十三度)
영하(零下) 이십도(二十度) 지상(地上)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裸木)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 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 받은 몸으로, 벌 받는 목숨으로
기립(起立)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목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零下)에서
영상(零上)으로 영상(零上) 오도(五度)
영상(零上) 십삼도(十三度) 지상(地上)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끈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시인 황지우 사진 (google image에서 발췌)
(작가 황지우)
황지우는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기법을 통해 풍자와 부정의 정신 및 그 속에 포함된 슬픔을 드러내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1952년 전남 해남 출생. 본명은 황재우(黃在祐). 서울대 미학과 및 동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연혁(沿革)」이 입선하고, 같은 해 『문학과지성』에 「대답 없는 날들을 위하여」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1983년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시집으로 기호‧만화‧사진‧다양한 서체 등을 사용하여 시 형식을 파괴함으로써 풍자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화엄사상(華嚴思想)과 마르크스주의를 기저에 둔 『나는 너다』(1987), 현실과 초월 사이의 갈등을 노래하며 그 갈등을 뛰어넘는 화엄의 세계를 지향한 『게 눈 속의 연꽃』(1991), 동시대인의 객관적인 삶의 이미지와 시인의 개별적인 삶의 이미지가 독특하게 겹쳐져 생의 회한을 담고 있는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있을 거다』(1998) 등을 간행하였다.
황지우는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기법을 통해 풍자와 부정의 정신 및 그 속에 포함된 슬픔을 드러내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시대를 풍자하고 이상향을 꿈꾸는 그의 시에는 정치성‧종교성‧일상성이 고루 배어들어 있다.
(수상내역)
1980년 작품명 ‘연혁(沿革)’ –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연혁(沿革)」이 입선
1983년 작품명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김수영 문학상
(작품목록)
흩어져 모이는 ‘작은 문학운동’, 그 인맥과 사상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겨울 나무에서 봄 나무에로
나는 너다
고은론–탄압받는 시인은 끝내 탄압을 이긴다
게눈 속의 연꽃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황지우 문학앨범 : 진창 속의 낙원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오월의 신부(新婦)
뼈아픈 후회
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
심인
(해설)
시인은 겨울을 통해 70~80년대의 군사정권하의 비민주적인 사회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무방비한 나목(벌거벗은 나무 – 가지만 앙상한 겨울나무를 말합니다.)으로 추위에 노출되는 모습을 통해 독재정권의 탄압을 형상화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겨울을 견뎌내고, 싹이 트는 봄이 오듯이 독재정권을 몰아내고 민주화의 과정을 쟁취한 시민혁명의 과정을 겨울나무가 봄나무로 변하는 과정에 빗대어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혹독한 추위를 버티는 나무의 생명력에서 독재정권을 몰아내고 민주화라는 봄을 수확하는 민중의 힘을 예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질문자님의 의도대로 고난을 극복했을때의 성취감이라고 해석을 하기 위해서는 나무를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의인화가 아닌 스스로 나무가 되는 의인화의 방식으로 표현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즉 이시는 시인이 나무를 의인화 시켰지만 어디까지나 제3자의 시선에서 나무의 생명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력을 예찬하는 것이죠, 반면 시인 자신이 나무에 동화가 되어 표현을 하였다면 고난과 역경을 극복했다
(참고문헌)
–일간『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42』(조선일보 연재, 2008) –시집 <겨울–나무로 부터 봄–나무에로> (1984,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