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시인 정지용 사진 (google image에서 발췌)
(작가 정지용)
본관은 연일(延日). 충청북도 옥천(沃川) 출신. 아명(兒名)은 태몽에서 유래된 지용(池龍)이고 세례명은 프란시스코[方濟角]이다. 가끔 ‘지용’으로 작품을 발표하고 있을 뿐이며, 여타의 아호(雅號)나 필명은 없다.
고향에서 초등 과정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 휘문고등보통학교(徽文高等普通學校)에서 중등 과정을 이수했다.
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京都]에 있는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귀국 후 곧바로 모교인 휘문고등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8·15광복과 함께 이화여자대학교 문학부 교수로 옮겨 문학 강의와 라틴어를 강의하는 한편, 천주교 재단에서 창간한 경향신문사의 주간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슨 까닭인지 확인된 바 아니나, 이화여대 교수직과 경향신문사 주간직은 물론, 기타의 공직에서 물러나 녹번리(현재 은평구 녹번동)의 초당에서 은거하다가 6·25 때 납북된 뒤 행적이 묘연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최근 평양에서 발간된 「통일신보」(1993.4.24., 5.1., 5.7.)에서 가족과 지인들의 증언을 인용해 정지용이 1950년 9월경 경기도 동두천 부근에서 미군 폭격에 의해 사망했다는 사실을 보도하기도 했다.
정지용의 행적에 대한 갖가지 추측과 오해로 유작의 간행이나 논의조차 금기되다가 1988년도 납·월북작가의 작품에 대한 해금 조치로 작품집의 출판과 문학사적 논의가 가능하게 되었다.
(활동사항)
시단 활동은 김영랑(金永郞)과 박용철(朴龍喆)을 만나 시문학 동인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본격화된다. 물론 그 이전에도 휘문고등보통학교 학생 시절에 요람동인(搖籃同人)으로 활동한 것을 비롯하여, 일본의 유학 시절 『학조』·『조선지광』·『문예시대』 등과 교토의 도시샤대학 내 동인지 『가(街)』와 일본시지 『근대풍경( 近代風景)』(北原白秋 주간)에서 많은 작품 활동을 하였다.
이런 작품 활동이 박용철과 김영랑의 관심을 끌게 되어 그들과 함께 시문학동인을 결성하게 되었다. 첫 시집이 간행되자 문단의 반향은 대단했고, 정지용을 모방하는 신인들이 많아 ‘지용의 에피고넨(아류자)’이 형성되어 그것을 경계하기도 했다. 아무튼 그의 이런 시적 재능과 활발한 시작 활동을 기반으로 상허(尙虛) 이태준(李泰俊)과 함께 『문장(文章)』 지의 시부문(詩部門)의 고선위원(考選委員)이 되어 많은 역량 있는 신인을 배출하기도 했다.
신인을 추천하는 과정에서도 자신의 시만큼 갈고 다듬고 하여 ‘대성(大成)의 영광(榮光)’을 함께 나누려는 자세로 임했다 함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문장』지를 통해서 추천한 박두진(朴斗鎭)·조지훈(趙芝薰)·박목월(朴木月) 등 청록파(靑鹿派)를 위시하여 이한직(李漢稷)·박남수(朴南秀) 등이 후에 펼친 시작 활동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그 동안 우리는 정지용의 시적 특색에 대한 논의를 언어의 감각미 이미지의 공간적인 형상화에만 한정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정지용의 시가 주제, 곧 내용이나 사상성이 배제되고 단순히 ‘모더니즘’이라는 문학사조적인 지평(地平)에서 진단해 왔기 때문에, 그의 삶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시적 속성을 잘 살피려 하지 않았다.
단순히 모더니즘이나 이미지즘의 차원에서만 논의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어느 작가이든 자신의 문학적 체험이 제한된 공간에만 고정되고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할 때, 정지용의 시작 과정도 어느 하나의 공간이나 체험으로 국한된 범주로만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시적 변모(變貌)를 시도한 통시성(通時性)의 원리와 구조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정지용의 시작 전반을 크게 두 단계로 구분해서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바다’ 시편들을 포함한 전기시작에서 한 사물의 감각적 인상이나 공간성의 이미지를 특색으로 들 수가 있다. 이들 시작들이 지니는 감각성과 공간성, 이런 시적 속성들이 반드시 표현적인 차원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사물의 깊이를 투시(透視)하는 시인의 시적 체험은 훨씬 깊이 자리하고 있다.
그 새로운 시어나 이미지로 하나의 사물을 재창조한다고 할 때, 그 사물의 깊이를 투시하여 실체(實體)를 파악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바다’로 향하는 정지용의 시적 상상력은 그 깊이에 자리한 생명의 신비성(神秘性)을 추구하는데 있고, 나아가서 이런 깊이의 시적 체험은 그의 신앙 시편들에서도 같은 맥락이다.
‘나무’의 직립성(直立性)이나 ‘불’과 ‘태양’의 이미지로 형상화된 그의 성신(聖神)으로 향하는 상승작용은 물론, 인간의 온갖 고뇌(苦惱)를 녹이려는 종교적 신앙의 열도(熱度)를 ‘불’로 형상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산’의 시편들로 구성된 『백록담』에 이르러서는 그 전기 시에서 보인 심혼(心魂)의 갈등과 동요와는 전혀 다른 정밀(靜謐)한 화평(和平)의 시세계를 보이고 있다
자기소멸과 일체의 세속적인 것에서 일탈(逸脫)하여 자연으로 되돌려 보다 근원적인 차원에서 무화(無化)시키고 ‘지인무기(至人無己)’의 경지에 이르러 있는 소박하고 원초적(原初的)인 ‘삶’을 영위하는 그런 마음의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상 정지용의 시세계를 통시적 차원에서 두 단계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한마디로 정지용은 우리 근대시사에서 하나의 큰 봉우리라 할 수 있다. 1920년 대 초의 외래 문학사조의 영향을 받아 문예사조의 혼류현상(混流現象)을 이루고 있었다면, 그 중엽에 등장한 정지용은 우리의 목소리를 가다듬어 노래한 것이다.
(작품)
우리말의 세포적 기능(細胞的 機能)을 추구하여 그 속성을 파악하고 언어의 감각미(感覺美)를 개척한 시인으로 1930년대 한국 시단을 주도해갔다. 유작으로는 『정지용시집(鄭芝溶詩集)』(시문학사, 1935)·『백록담(白鹿潭)』(문장사, 1941) 등 두 권의 시집과 『문학독본(文學讀本)』(박문서관, 1948)·『산문(散文)』(동지사, 1949) 등 두 권의 산문집이 있다.
산문집에는 「수수어(愁誰語)」·「다도해기(多島海記)」·「화문행각(畫文行脚)」 등과 같은 수필류와 시론(詩論) 및 기타 역시(譯詩)와 일반 평문 등으로 편성되어 있다. 이외에도 이들 단행본에 실리지 않은 시작과 산문의 상당수가 집성되어 1988년 민음사에서 시집과 산문집으로 구분하여 전집(全集)이 간행되었다
(해설)
이 작품은 제목에서 보듯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관념적 주제를 다양한 감각적 심상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고 있다. 비록 체험이 없는 독자일지라도 시인이 제시하는 구체적 심상을 따라가다 보면, 시적자아의 고향이 독자의 고향이 되는 체험을 갖게 될 것이다. 시인은 이것을 위해 청각적, 시각적 심상, 더 나아가 공감각적 심상을 활용한다.
근래 대중 가요로 만들어져 널리 회자되고 있는 이 작품은 고향에 대한 회상과 그리움을 주정적 어조로 노래하고 있다. 고향 충북 옥천을 떠나 낯선 타국(他國)땅에서, 그것도 식민지 망국의 설움을 간직하고 생활하던 젊은 시인은 꿈에도 잊혀지지 않는 고향의 따스한 정경들을 떠올리며 그리움에 목이 말랐을 것이다. 그가 노래하는 고향의 정경과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느 한 특정 지역에서만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실개천이 지줄대고’ ‘얼룩백이 황소가 금빛 울음을 우는 곳’이며 ‘짚베개를 돋워 고이시는 늙으신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우리 민족의 고향에 대한 보편적 정서와 부합된다. 그러므로 그의 향수는 그만의 향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공감대가 형성된 향수로 확산되게 된다.
이 시는 음악의 반복 형식처럼 구성되었는데, 각 연 모두 ‘― 는(던) 곳’으로 끝맺고 있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고향의 정경을 실감있게 제시하고 있으며, 그 뒤에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독백이 이어짐으로써 간절한 그리움을 반복, 강조하는 단순한 표현 기법을 통하여 감동의 극대화를 이루고 있다. 한편, 홀수 연은 고향의 정겹고 따스한 모습을, 짝수 연은 고향의 아픈 모습을 교묘하게 배합시켜 고향의 밝고 어두운 모습을 번갈아 보여 줌으로써 고향을 아름답게만 보는 것이 아니라, 푸근한 흙내음과 간난(艱難)한 삶의 고난이 함께 존재하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다. 또한 ‘지줄대는’, ‘해설피’, ‘풀섶’, ‘함초롬’이라는 감각적 우리말 구사와 청각적, 시각적 이미지와 공감각적 이미지, 냉온 감각 등의 수준 높은 이미지 활용은 이 작품을 구체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
<향수>는 정지용의 초기시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절실하게 노래하고 있다. 14세에 고향을 떠나 서울과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고향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지녔을 것 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새삼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는 고향의 정경을 그린 다섯 개의 병렬적으로 이어지며,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라는 후렴구가 반복되는 단순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연에 그려진 고향의 모습은 비록 단편적이지만 하나같이 사실적이고, 고향의 원형을 고스란히 살려내고 있다. 이 작품에서 고향은, 평화롭고 아늑한 곳(1연), 부모와 형제가 살고 있는 곳(2, 4연), 유년의 꿈이 깃들인 곳(3연), 고달프고 초라하지만 정겨운 사랑이 넘치는 공간(5연)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러한 고향의 이미지와 후렴구의 정서가 적절히 섞이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효과적으로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