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창시(53)  바다와 나비(1948) 김기림(1908 ~ 미상)

애창시(53)

 

바다와 나비(1948)      김기림(1908. 5. 11. ~ 미상)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시인 김기림 사진)
(시인 김기림 사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발췌)

 

(작가 김기림) 

호는 편석촌(片石村). 1908년 5월 11일 함북 성진 출생. 1915년 임명(臨溟)보통학교에 입학했고, 1921년 상경해서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 중퇴한 후 1930년 니혼대학 문학예술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조선일보사 학예부 기자를 지내다가 1931년 낙향하여 ‘무곡원(武谷園)’이라는 과수원을 경영하며 창작에 전념했다. 1939년 토호쿠제대(東北帝大) 영문과를 졸업한 후에는 다시 조선일보사 기자를 지냈다. 1942년 경성중학에서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다가 광복 후 상경해서 서울대, 중앙대, 연세대 등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때 납북된 후 사망했다.

1931년 『조선일보』 기자로 있으면서 시 「고대(苦待)」(1931), 「날개만 도치면」(1931)을 발표한 후, 시 「어머니 어서 일어나요」(1932), 「오 어머니여」(1932), 「봄은 전보도 안치고」(1932) 등을 발표했다. 1933년 구인회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이상(李箱)과 함께 당시 모더니즘의 대표 주자로 활약했다. 이양하‧최재서 등과 함께 주지주의 문학을 소개하는 데 앞장섰으며, 특히 I. A. 리차즈의 이론을 도입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문학이론을 정립했다.

「현대시의 기술」(1935), 「현대시의 육체」(1935), 「모더니즘의 역사적 위치」(1939) 등 주지적 시론과 「바다의 향수」(1935), 「기상도」(1935) 등 중요한 시들을 계속 발표했다. 광복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의 시부 위원장으로 활동하는 한편, 문학인의 정치 참여를 주장하기도 했다. 시집으로 『기상도』(1936), 『태양의 풍속』(1939), 『바다와 나비』(1946), 『새노래』(1948), 수필집 『바다와 육체』(1948), 평론집 『문학개론』(1946), 『시론』(1947), 『시의 이해』(1949) 등이 있다. 1988년 심설당에서 『김기림 전집』이 출판되었다.

김기림의 문학적 활동은 창작과 평론 활동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초기의 그의 작품은 감상주의에 대한 비판과 새로움의 추구로 요약된다. 그는 과거의 시들이 감상주의에 사로잡혀 허무주의로 흐르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건강하고 명랑한 ‘오전의 시론’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김기림이 근대화와 그에 따른 물질문명의 발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써, 시에서 역시 밝고 건강한 시각적 이미지들이 주를 이룬다. 초기의 김기림의 시들은 『태양의 풍속』에 수록되어 있다.

중기의 작품들은 세계적인 불안사조의 유행과 근대화의 허실에 대한 깨달음으로 인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지식인으로서의 자각을 보여준다. 김기림은 시각적 이미지 또는 회화성만을 추구하는 시는 또 하나의 순수주의에 지나지 않으며, 시는 시대정신을 담아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다. 이때 시인은 자본주의 사회의 부산물인 인텔리겐챠로 파악되며, 대중에게 시대의 가치를 전달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은 장시 「기상도」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후기의 작품은 광복을 전후한 시기로서, 이때 김기림은 문학의 사회 참여를 가장 중요한 역할로 꼽고 있다. 그가 조선문학가동맹에 참여하고 사회참여를 주장하는 글을 발표한 것은, 시대정신을 전달하는 것을 시의 목표로 설정했던 중기의 입장과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그는 광복기를 시인이 공동체 속에서 그들을 대변할 수 있는 적절한 시기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은 시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바다와 나비』에서 보였던 우울하고 개인적인 성향 대신 『새노래』에는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한 강하고 희망찬 의지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정부 수립과 더불어 전향을 한 후에는 자신의 시론을 정리하고, 『문장론 신강』 등의 문학이론서를 내기도 했다.

학력사항
1915년 ~ 임명보통학교
1921년 ~ 보성고등보통학교(중퇴)
~ 1930년 일본 니혼대학교 – 문학예술학
~ 1939년 일본 토호쿠제국대학교 – 영어영문학

(경력사항)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
1931년 ~ 무곡원 과수원 경영
1931년 ~ 조선일보 기자
1933년 ~ 구인회 동인 활동
서울대학교 강의
중앙대학교 강의
연세대학교 강의
조선문학가동맹 시부 위원장
조선문학가동맹 참여

(작품목록)
오후와 무명작가들
시인과 시의 개념
정조문제의 신 전개
최근 해외문단 소식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프로필
‘피에로’의 독백
표절행위에 대한 ‘저날리즘’의 책임
시의 기술‧인식‧현실 등 제문제
식전의 말, 우리의 문학
‘인텔리’의 장래
상아탑에의 비극
‘홍염’에 나타난 의식의 흐름
문예시평
1932년의 문단전망
네게 감화를 준 인물과 그 작품
신민족주의 문학운동
청중없는 음악회
현문단의 부진과 전망
김동환론
신문소설 올림픽 시대
써클을 선명히 하자
시작에 있어서의 주지적 태도
비평의 재비판
협전을 보고
스타일리스트 이태준을 논함
‘무기와 인간’ 단평
‘포에지’와 ‘모더니티’
최근의 미국 평론단
현대 예술의 원시에 대한 욕구
문단시평
모윤숙씨의 리리시즘-시집 ‘빛나는 지역’을 읽고
예술에 있어서의 ‘리알리티’, ‘모랄’문제
1933년도 시단의 회고와 전망
입춘 풍경
1934년을 임하여 문단에 대한 희망
문예시평
현대시의 발전
문학상 조선주의의 제양자
신휴매니즘의 요구
장래할 조선문학은
신춘조선시단 전망
시에 있어서의 기교주의 반성과 발전
현대시의 기술
오전의 시론
현대시와 육체
현대시의 난해성
오전의 시론-기초편 속론
객관에 대한 시의 ‘포즈’
시대적 고민의 심각한 축도
오전의 시론-기술편
현대비평의 딜렘마
사슴을 안고
시인으로서 현실에 적극적 관심
을해년의 시단
‘정지용시집’을 읽고
걸작에 대하야
기상도

과학과 비판과 시

고(故) 이상의 추억

오장환씨의 시집 ‘성벽’을 읽고

여행

현대와 시의 르네쌍스

모더니즘의 역사적 위치

푸로이드와 현대시

‘촛불’을 켜놓고

시단의 동태

태양의 풍속

문학의 제문제

언어의 복잡성

조선문학에의 반성

감각‧육체‧리듬

과학으로서 시학

문단불참기

시인의 세대적 한계

시와 과학과 회화

이십세기의 서사시

시의 장래

과학과 인류[멘돌라 작]

‘동양’에 관한 단장(斷章)

우리 시의 방향

건국과 지식계급-좌담회

시단별견

새로운 시의 생리

민족문화의 성격

바다와 나비

문학개론

전진하는 시정신

민족과 문학의 융성에 필히 성공되기를 염원

정치와 협동하는 문학

민족문화의 수립

시론

문학의 전진

새 문체의 확립을 위하야

예술에 있어서의 정신과 기술

낭독시에 대하여

분노의 미학

I. A. 리챠즈론

T. S. 엘리어트의 시

바다와 육체

기상도[재판]

새노래

체험의 문학

이상(李箱)문학의 한 모습

민족문화의 성격

시의 이해

문화의 운명

소설의 파격

시조와 현대

문장론 신강

김기림 전집

새나라 송(頌)

 

(해설)

청산(靑山)이라면 몰라도 바다는 나비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거대한 바다에 비해 흰나비는 얼마나 작고 어리고 가냘픈가. 이 무구한 흰나비는 바다를 본 적이 없다. 알 수 없는 수심과 거센 물결에 대해 들은 적도 없다. 흰나비에게 푸르게 펼쳐진 것은 청(靑)무우밭이고 그렇게 푸른 것은 꽃을 피워야 마땅하다. 흰나비가 삼월의 바다에서 청무우꽃을 꿈꾸는 까닭이다. 그러나 짜디짠 바다에 흰나비의 날개만 절 뿐, 삼월이어도, 바다가 푸르긴 해도, 바다는 꽃을 피우지 않는다. 나비의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만 비친다. 삼월의 바다, 어린 나비, 초생달은 모두 이른 것들이다. 시작인 것들이다.

허공을 나는 것들은 날개가 중요하고 땅을 걷는 것들은 허리가 중요하다. 헌데 ‘나비의 허리’라니! 공주의 아름다움은 춤에 있고 나비의 아름다움은 비상(飛翔)에 있다. ‘공주처럼 지쳐서’ 바다에서 돌아온 나비. 바다로의 비상에 실패하고 뭍으로 귀환한 ‘나비의 허리’는 상징적 의미가 깊다. 이제 흰나비는 청무우 꽃그늘을 노니는 그런 나비가 아니다. 짜디짠, 바다의 깊이와 파도의 흔들림을 맛본, 허리가 실한 나비다. “땅을 밟고 하는 사랑은 언제고 흙이 묻”(‘주피터 추방’)기 마련이다. 새롭고 먼 곳을 향해 비상하다 날개가 절어본 적이 있기에, 흰나비는 이제 흙이 묻더라도 땅을 밟는 사랑을 알았으리라.

이 시의 꽃은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이다. 하얗고 가늘고 기다란 나비의 몸과 초생달이 그려지고, 새파란 바닷물에 새파랗게 전 흰나비의 허리가 그려지고, 지쳐 돌아오는 흰나비 허리를 비추는 저물녘 초생달이 그려지기도 한다. ‘시린’ 풍경들이다. 어쨌든 ‘바다’가 냉혹한 현실이라면 ‘나비’는 순진한 꿈의 표상이다. 꿈은 언제나 현실의 냉혹함을 모른 채 도전한다. 근대 혹은 서구문명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식민지 지식인의 자화상이 떠오른다. 역사 혹은 시대의 흐름 앞에 무력했던 시인의 모습도.

(참고문헌)

– 일간『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53(조선일보 연재, 2008)

– 애송시 100편 – 제 53바다와 나비 김기림 조선일보 홈페이지

글쓴이 : 편집부(hansoln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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