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창시(56) 상한 영혼을 위하여(1983) 고정희(1956~1991)

애창시(56)

 

상한 영혼을 위하여(1983)고정희(1948-1991)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을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시인 고정희 사진
시인 고정희 사진 (한국여성인물사전에서 옮김)

 

(생애 및 활동 사항)

전라남도 해남에서 5남 3녀의 장녀로 태어났다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였으며 1975년 『현대시학』 추천으로 등단하였다『전남일보』 기자와 광주 YWCA 대학생부 간사 그리고 크리스천아카데미 출판부 책임간사와 가정법률상담소 출판부장을 역임하였고『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으로 일했다고정희는 한국신학대학의 모토인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자유사랑정의 실천의 정신으로 대학생 문화에도 적극 참여하였다그리고 우리나라 초기 여성운동에도 혁혁한 족적을 남겼는데남녀노소가 서로 평등하고 자유롭게 어울려 사는 대안 사회를 모색한 여성주의 공동체 모임 또 하나의 문화‘ 동인으로 참여하여 중추적 역할을 감당하였다그런 이력이 토대가 되어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을 맡아보았다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시인이었다그는 시와 여성주의를 결속한 독자적 시세계를 보여주었고여성의 시선과 경험으로 여성만의 역사성과 사회성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였다결국 그는 자유 의지를 바탕으로 한 실존적 고통을 승인하면서메시아니즘을 핵심으로 하는 앙가주망의 시학을 펼쳤고내면 성찰과 남은 자의 그리움을 표상하는 시세계를 남겼다거기에 여성으로서의 경험과 시선이 결합하였다물론 그가 내놓은 열 권의 시집은 제각기 조금씩 다른 양식과 정조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들이 이러한 성격 규정과 배치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이 모든 것은 기독교 정신 또는 이념이라는 것이 편협한 종교 도식이 아니라 넓은 현실의 세계를 면밀하게 살펴내는 적극적 인식의 한 패러다임임을 시사하는 훌륭한 예증이라 할 것이다이렇게 의미 있는 시적인 족적을 남긴 그는 생애 마지막 작품을 다음과 같은 시로 남기고 갔다. “사십대 문턱에 들어서면/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기다릴 인연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아니와 있는 인연들을 조심스레 접어두고/보속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사십대」마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한 이 작품은사랑과 성찰의 모습이 잔잔하게 다가오는 시편이다.

1975년『현대시학』에 「연가」「부활 그 이후」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한 고정희는 타계하는 해인 1991년까지 모두 열 권의 시집을 상재한 시인이다첫 시집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1979) 이후 『실락원 기행』(1981), 『초혼제』(1983), 『지리산의 봄』(1987), 『저 무덤에 푸른 잔디』(1989), 『아름다운 사람 하나』(1990) 등으로 그는 지칠 줄 모르는 창작 여정을 보여주었다그는 시를 통해 어떤 가혹한 억압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의지와 생명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형상화하였다특히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하여 전통적 남도가락과 씻김굿 형식을 빌려 당대 민중의 아픔을 드러내고 위안하는 장시 형식을 잇달아 발표함으로써 새로운 양식적 자각도 보여주었다자신의 시의 모체가 되어온 지리산 등반 도중 실족으로 타계하였다유고 시집으로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1992)가 있다.

 

 

(의의와 평가)

 고정희는 1975년 『현대시학』을 통해 문단에 나온 이래 15년간 『실락원 기행』『초혼제』『지리산의 봄』『저 무덤 위의 푸른 잔디』『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여백을 남긴다』 등 모두 열 권의 시집을 발표하였다고정희의 시세계는 기독교적 세계관의 지상 실현을 꿈꾸는 노래로부터 민중에 대한 치열한 사랑과 관심여성주의적 시선과 경험에 입각한 선구자적 작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탐구의 편폭을 보여준다그리고 그 모든 시편에서 목숨 있는 존재들에 대한 사랑을 적극적으로 노래하였다전통적 남도 가락과 씻김굿 형식을 빌려와 민중의 고난과 저항의 모습을 형상화하기도 한 그는 자유민족민중그리고 여성의 해방을 위해 노력한 시인이다. 198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나타난 페미니즘 운동의 선구자였고민중적 관점에서 시를 지속적으로 쓴 시인이었으며기독교 정신의 시적 형상화에서도 선구적 업적을 남겼다애상과 연성을 위주로 씌어졌던 한국 여성시 계보에 굵은 목소리와 강인한 의지를 이채롭게 던진 몫도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해설)

시름 많은 사람들과 어두운 땅 한 평 가꾸다 갈래요우리나라 하늘 한 평 비추다 갈래요라고 노래했던 시인 고정희(1948~1991). 이 시를 읽고 있으면 마치 그녀가 상한 영혼의 곁에 앉아 작은 목소리로 흙에 심은 뿌리 죽는 법 보았나요라고 묻는 것 같다평론가 김주연이 분석한 대로 이 시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시고 가는 등불도 끄지 아니하신다는 성경의 말씀과 겹쳐 읽힌다. ‘하늘 아래라는 표현도 예수의 언약과 임재(臨在)를 둥글게 포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내 넋으로 기댈 곳 없이 큰 고통에 놓여있는 사람들을 힘껏힘껏 껴안고 살겠다는 강한 의지를 이 시는 보여준다한국신학대학을 졸업했고 다분히 기독교적인 신앙에 기초한 시편들을 써낸 고정희 시인은 기독교의 현실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칼을 들이댔다. “하느님을 모르는 절망이라는 것이 얼마나 이쁜 우매함인가라고 질문했고동시에 하느님을 등에 업은 행복주의라는 것이얼마나 맹랑한 도착 신앙인가라며 고민했다그녀가 비판하고 날카롭게 투시한 대상은 눈앞의 현실 그 자체였으며돌봄이 있는 따뜻한 공동체는 그녀가 꿈꾸는 세계였다고정희 시인은 한 생애를 정열적으로 살다 간 여성운동가이기도 했다.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을 지냈고여성주의 문화집단인 또 하나의 문화‘ 창립 동인으로도 활동했다. “제도적 억압의 굴레를 극복하려는 힘그것이 자유 의지라고 말할 수 있다면 나의 시는 항상 자유 의지에 속해 있는 하나의 에너지라고 자평했는데조금의 호락호락함도 없이 평소 신념을 시 창작과 생활에서 실천했다한 시대의 깊고 어두운 계곡을 묵상했으므로 그녀의 시는 미지근하거나 융융한 그것이 아니었다그녀의 시는 80년대의 격문이면서 우릉우릉 폭발하는 화산(火山)’이었다. 1991년 6월 지리산 뱀사골을 오르다 폭우로 불어난 물에 휩쓸려 생을 마감했다그녀의 충격적인 죽음을 생각하면 생전에 쓴 시 지리산의 봄 1-뱀사골에서 쓴 편지가 자꾸 떠오른다. “아득한 능선에 서 계시는 그대여/우르르우르르 우뢰 소리로 골짜기를 넘어가는 그대여/()/아름다운 그대 되어 산을 넘어갑니다/구름처럼 바람처럼/승천합니다라고 쓴 시그녀의 시를 읽고 있는 오늘 새벽은 내 가슴이 아프다.

 

참고문헌

– 「고정희론」(송현호『한국 현대시 연구』민음사, 1989)

– 「연시와 통속성의 문제」(박혜경『한길문학』 1991. )

– 「고정희 시에 나타난 종교의식과 현실인식」(유성호『한국문예비평연구』 1,

– 일간『한국 –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57(조선일보 연재,

– 2008)한국현대문예비평학회, 1997)
일간『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56(조선일보 연재, 2008)
(『이 시대의 아벨』문학과지성사. 1983)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글쓴이 : 편집부(hansoln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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