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창시(59) 사철나무 그늘아래 쉴 때는(2002) 장정일(1962~ )

애창시(59)

 

사철나무 그늘 아래  때는(2002)          장정일(1962 ~ )

 

그랬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친 사람들
가끔씩 사철나무 그늘 아래  때는
계절이 달아나지 않고 시간이 흐르지 않아
오랫동안 늙지 않고 배고픔과 실직
잠시라도 잊거나
그늘 아래 휴식한 만큼 아픈 일생이
아물어진다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굵직굵직한 나무등걸 아래 앉아
억만 시름 접어 날리고
결국 끊지 못했던 흡연의 사슬
끝내 떨칠  있을 
그늘 아래 앉은 그것이 그대로
하나의 뿌리가 되어
나는 지층 가장 깊은 곳에 내려앉은
물맛을 보고
수액이 체관 타고 흐르는 그대로
한됫박 녹말이 되어—>시집과 다르다 –>하나의 뿌리가 되어
나뭇가지 흔드는 어깨짓으로 지친
새들의 날개와
부르튼 구름의 발바닥 쉬게   있다면
좋겠다 사철나무 그늘 아래  내가 앉아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내가 나밖에   없을 
이제는 홀로 있음을 만물 자유케 하며
스물   앞에 쌓인 술병
  돌아서 가고
공장들과 공장들 숱한 대장간과
국경의 거미줄로부터
그대 걸어나와 서로의 팔목 야윈
슬픔 잡아 준다면
좋을 것이다 그제서야 조금씩
시간의 얼레도 풀어져
초록의 대지는 저녁 타는 그림으로
어둑하고
형제들은 출근에 가위 눌리지 않는
단잠의 베개  것인데
 켠에서 되게 낮잠을  버린 사람들이 나즈막히 노래불러
유행 지난 시편의  구절을 기억하겠지
바빌론 강가에 앉아
사철나무 그늘을 생각하며 우리는
눈물 흘렸지요                     

 

 시인 장정일 사진
시인 장정일 사진 (google image에서 발췌)

 

 

(장정일 시인)

1962년 경북 달성 태생. 1977년 성서중학교를 졸업한 후 독학으로 문학 수업.

 1984년 『언어의 세계』 3집에 「강정 간다」외 4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그는 ‘악마적 결벽성으로 사회의 위악을 폭로’하는 시인으로 주목되기도 하였고‘자해적 테러리즘’ 에 빠져들어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그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표현하는 언어들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자기가 추구하고 싶은 대로 꺼릴 것 없는 작품세계를 추구해 왔다. 1987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희곡 「실내극」이 당선된 후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으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중졸’에 그친 학력에도 불구하고 시음악연극 등 문화 전반에 걸친 백과 사전적 지식은 그에 대한 세상의 관심을 증폭시켰으며일탈적인 그의 작품세계는 그의 삶의 이력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1990년 소설집 『아담이 눈 뜰 때』를 내면서 장르를 넘나드는 문학적 다양성 면에서도 화제를 뿌렸으며그의 작품들이 연이어 영화화되고 연극 무대에 올려지면서우리 문화계에 ‘장정일 신드롬’이라 할 만한 새 흐름을 창조해 내기도 했다.

 장정일 소설의 문제성은 자기 파괴를 통한 전달방식의 혁신성에 있다고들 한다겉으로는 온전해 보이는 우리 사회의 위악성을 폭로하면서독자들에게 의도적인 불편함을 조성하고 아무도 가려 하지 않았던 전면적인 자기 폭로의 길을 걸어 온 것이 장정일 문학의 특이함이요 특출함이다.

 그는 1996년에 출간한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음란물로 사법적 판단의 대상에 오르게 되면서 구속되기도 하였다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1987), 『길안에서의 택시잡기』(1988), 『주목을 받다』(2005)와 소설집 『아담이 눈뜰 때』(1990),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2),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1994), 『내게 거짓말을 해봐』(1996), 『보트하우스』(2005)가 있으며희곡집 『긴 여행』(1995), 『고르비 전당포』(2007)이 있다.

 

수상내역:
1987년 작품명 실내극‘ –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실내극」이 당선

작품명 ‘햄버거에 대한 명상‘ – 김수영 문학상

 작품목록:

성 아침

햄버거에 관한 명상

펠리칸

고잉 투 캘리포니아

실크 커튼은 말한다

길 안에서 택시잡기

서울에서 보낸 3주일

카프카에게 존경을

삶과 문학간의 간격 메우기이기철론

이유들‘무림일기’유하 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상복을 입은 시집

아담이 눈뜰 때

이하석시인연구

정보화 사회의 시학‘비디오천국’하재봉 저

아담이 눈 뜰 때

다원주의 문학에 대하여

지하인간

천국에 못 가는 이유

인공 시학과 그 계보김춘수이하석박기영

개인기록

긴 여행

내게 거짓말을 해봐

펄프 에세이 : 작가 장정일의 문학탐색

보트 하우스

중국에서 온 편지

 

 

(해설)

그늘나비 그늘꽃 그늘나무 그늘처마 그늘담 그늘당신 그늘심지어 위태롭게 서 있는 전봇대나 바지랑대에도 그늘은 있다그늘은 눈부시지 않고 어둡지 않다뜨거운 햇살은 가려주고 비바람은 대신 먼저 맞아준다여운깊이여유멋을 지닌다는 점에서 그림자와 다르다그래서일까그늘 아래 서면잠시시간도 잊고 이름도 잊고 일도 잊고 갈 곳도 잊는다그늘 아래 스스로를 부리듯 노동과 불안과 걱정을 부려두고잊거나 잃은 것을 떠올리며 눈물짓기도 한다.

시간과 계절은 너무 빨리 달아나고우리는 너무 빨리 늙고늘 배고픔과 실직의 공포에 시달리면서 출근과 스트레스와 피로와 시름과 술과 담배에 지쳐 있는데… 맨땅에 뿌리를 내린 채 사시사철 변함 없는 사철나무의 그늘이니 참 깊고 넓겠다시인 장정일(46)이 꿈꾸던 사철나무 그늘‘, 누구나 그런 그늘 하나쯤은 꿈꾸기 마련이다. ‘가장 장정일답지 않는 시임에도 가장 많이 애송되고시인 스스로도 첫 시집을 여는 시로 삼았던 까닭일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장정일 [蔣正一]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일간『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59

(조선일보 연재, 2008)

글 쓴이 : 편집부(hansolnon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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