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창시(6)
동천 <1968년> 서정주(1915 ~ 2000)
내 마음 속 우리님의 고은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서정주 시인]
서정주의 초기 시는 보들레르의 영향을 받아 악마적이며 원색적인 시풍을 보여주지만, 해방이 되면서 인간의 운명적 업고(業苦)에 대한 인식은 영겁의 생명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게 된다.
호는 미당(未堂). 전북 고창 태생. 소년 시절에 한학을 배우다가 중앙고보와 고창고보에서 수학하였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이 당선되고, 김동리‧함형수 등과 함께 시동인지 『시인부락』을 창간하면서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시작하였다. 해방 후에는 조선청년문학가협회 결성에 앞장섰으며, 1949년 한국문인협회 창립을 주도하고 1954년에는 예술원 종신회원으로 추대되었고, 줄곧 동국대학교에서 시문학을 강의하였다.
서정주의 초기 시는 보들레르의 영향을 받아 악마적이며 원색적인 시풍을 보여주고 있다. 첫 시집 『화사집』에서 잘 드러나듯이 토속적인 분위기를 배경으로 하여 인간의 원죄의식과 원초적인 생명력을 읊는 것이다. 하지만, 해방이 되면서 인간의 운명적 업고(業苦)에 대한 인식은 동양적인 사상의 세례를 받아 영겁의 생명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게 된다.
이 시기의 시집 『귀촉도』는 표제시에 있어서부터 동양적인 귀의를 시사해주는 것으로, 토착적인 정서와 고전적인 격조에의 지향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1956년에 간행된 『서정주시선』에서는 「풀리는 한강 가에서」, 「상리과원」 등의 작품으로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한과 자연과의 화해를 읊었고, 「학」, 「기도」 등의 작품에서 원숙한 자기 통찰과 달관을 보여주고 있다. 서정주의 시는 『신라초』에 이르면서 새로운 정신적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산돌을 주워 와서 물을 주어 길렀듯이 이 시에서도 미당은 ‘고은 눈썹’을 생장시키는 재기를 보여준다. 미당의 시에는 유계(幽界)가 있다. 그는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라며 황홀을 노래했지만 그는 우주의 생명을 수류(水流)와 같은 것으로 보았다. 흘러가되 윤회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 운행에서 그는 목숨 받은 이들의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노래했다. 목숨 없는 것에는 목숨의 숨결을 불어 넣었다. 미당의 시의 최심(最深)은 삶 너머의 이승 이전의 유계를 돌보는 시심에 있다. 이 광대한 요량으로 그는 현대시사에 수많은 활구(活句)를 낳았다
[참고문헌]
– 서정주 [徐廷柱]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일간『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6』(조선일보 연재, 2008) – 『동천』.민중서관. 1968:『미당 시전집』. 민음사. 1994-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그에게 있어 초월적인 비전의 신화적인 거점이 되고 있는 신라는 역사적인 실체라기보다는 인간과 자연이 완전히 하나가 된 상상의 고향과도 같다. 서정주는 『신라초』에서 불교사상에 기초를 둔 신라의 설화를 제재로 하여 영원회귀의 이념과 선(禪)의 정서를 부활시켰던 것이다.
1969년에 나온 시집 『동천』에서는 불교의 상징세계에 대한 관심이 엿보인다. 『질마재 신화』는 시인 자신의 유년기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질마재에 얽힌 사연들을 이야기하듯이 풀어내고 있다. 『떠돌이의 시』에서는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 등에 공감하는 시인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서정주는 생의 본질적 문제들을 탐구함으로써 존재의 영원성에 도달하고자 하였으며, 언어 미학의 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초기에는 대지적 존재로서 인간의 조건과 본능의 몸부림을 보들레르적 탐미주의로 승화시키려 했으나 이의 한계를 깨닫고 곧 동양의 영원주의로 회귀한다.
중기 이후에 그가 몰두했던 신라정신과 신화 혹은 설화적 세계는 바로 그의 이와 같은 정신편력을 보여주는 것들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그의 탁월한 상상력과 뛰어난 언어의 감수성이 빚어낸 작품의 문학적 완결성이라 할 것이다. 서정주의 시 세계는 전통적인 서정세계에 대한 관심에 바탕을 두고 토착적인 언어의 시적 세련을 달성하였다는 점, 시 형태의 균형과 질서가 내재된 율조로부터 자연스럽게 조성되고 있는 점등이 커다란 성과로 평가된다. 1972년 일지사에서 『서정주 문학 전집』(전5권)을 간행하였으며, 1994년 민음사에서 『미당 시 전집』이 나왔다.
[해설]
겨울 밤하늘을 올려 본다. 얼음에 맨살이 달라붙듯 차갑고 이빨은 시리다. 문득 궁금해진다.
미당(未堂) 서정주 시인은 왜 한천(寒天)에 사랑의 일과 사랑의 언약과 사랑의 얼굴을 심어 두었을까. 손바닥으로 쓸어보아도 온기라고는 하나 없는 그곳에 왜 하필 사랑을 심어 두었을까. 매서운 새조차 ‘비끼어 가’는 사랑의 결기를 심어 두었을까. 생심(生心)에 대해 문득 생각해본다. 처음으로 마음이 생겨나는 순간을 생각해본다. 무구한 처음을, 손이 타지 않아서 때가 묻지 않은 처음을. 부패와 작파가 없는 처음을. 신성한 처음을. 미당이 한천을 염두에 둔 것은 처음의 사랑과 처음의 연민과 처음의 대비와 처음의 그 생심이 지속되기를 바랐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심어 놨’다고 한 까닭도 생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심는다는 것은 생육(生育)한다는 것 아닌가. 여리디 여린 것, 겨우 자리 잡은 것, 막 숨결을 얻은 것, 젖니 같은 것 이런 것이 말하자면 처음이요, 생양해야 할 것들 아닌가. 미당은 초승달이 점점 충만한 빛으로 나아가듯 처음의 사랑 또한 지속되고 원만해지기를 기도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미당의 시에는 생명 없는 것을 생장시키는 독특한 영기(靈氣)가 서려 있다. 그는 시 ‘첫사랑의 詩’에서 ‘초등학교 3학년 때 / 나는 열두 살 이었는데요. / 우리 이쁜 여선생님을 / 너무나 좋아해서요. / 손톱도 그분같이 늘 깨끗이 깎고, / 공부도 첫째를 노려서 하고, / 그러면서 산에 가선 산돌을 줏어다가 / 국화 밭에 놓아두곤 / 날마다 물을 주어 길렀어요.’라고 하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