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이 타는 가을강(江)(1959)박재삼(1933~1997)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江)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와 가는,
소리죽은 가을강(江)을 처음 보것네
(시인 박재삼 사진) (google image에서 발췌)
(박재삼 시인)
1933년 4월 10일 도쿄 출생. 경남 삼천포에서 성장했으며, 고려대 국문과를 중퇴했다. 현대문학사, 대한일보사, 삼성출판사 등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제2회 현대문학신인상, 한국시인협회상, 노산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인촌상 등을 수상했다. 1953년 시 「강물에서」가 모윤숙에 의해 『문예』에서 추천되고, 1955년 시 「정적」이 서정주에 의해 『현대문학』에 추천되었으며, 같은 해 시조 「섭리」가 유치환에 의해 『현대문학』에 추천됨으로써 추천을 완료하였다.
1962년 첫 시집 『춘향이 마음』을 간행한 이래 시집 『햇빛 속에서』(1970), 『천년의 바람』(1975), 『어린 것들 옆에서』(1976), 『추억에서』(1983), 『아득하면 되리라』(1984), 『내 사랑은』(1985), 『대관령 근처』(1985), 『찬란한 미지수』(1986), 『바다 위 별들이 하는 짓』(1987), 『박재삼 시집』(1987), 『사랑이여』(1987), 『울음이 타는 가을 강』(1987), 『다시 그리움으로』(1996), 『사랑하는 사람을 남기고』(1997) 등 다수의 시집과 시 선집을 간행하였다. 수필집으로는 『울밑에 선 봉선화』(1986), 『아름다운 삶의 무늬』(1987), 『슬픔과 허무의 그 바다』(1989) 등이 있다.
1997년 6월 8일 타계했다. 그의 시 세계는 시 「춘향이 마음」(1956)과 「울음이 타는 가을 강」(1959) 등으로 대표되는데, 그는 이런 시들을 통해 한국 서정시의 전통적 음색을 재현하면서 소박한 일상 생활과 자연에서 소재를 찾아 애련하고 섬세한 가락을 노래했다.
그는 “누님의 치맛살 곁에 앉아/ 누님의 슬픔을 나누지 못하는 심심한 때는/ 골목을 빠져 나와 바닷가에 서자”(「밤바다에서」 1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슬픔이라는 삶의 근원적인 정서에 한국적 정한의 세계를 절제된 가락으로 실어, 그 속에서 삶의 예지와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그의 시에 있어서 자연이란, 삶의 이치를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음으로써 영원하고 지순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세계이다.
그는 그 자연에 의지하여 위로와 지혜를 얻지만, 때로는 자연의 완벽한 아름다움과 인간과의 거리 때문에 절망하기도 한다. 박재삼의 시는 1950년대의 주류이던 모더니즘 시의 관념적이고 이국적인 정취와는 달리 한국어에 대한 친화력과 재래적인 정서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여 주어, 전후 전통적인 서정시의 한 절정을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그의 시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구어체의 어조와 잘 조율된 율격은, 그의 시의 아름다움과 자연스러움을 보장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학력사항)
고려대학교 – 국어국문학(중퇴)
(경력사항)
현대문학사, 대한일보사, 삼성출판사 등에서 근무
(수상내역)
제2회 현대문학신인상, 한국시인협회상, 노산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인촌상
(작품목록)
-울음이 타는 가을 강
-춘향이 마음
-수정가
-한
-햇빛 속에서
-소곡
-정릉 살면서
-천년의 바람
-어린 것들 옆에서
-뜨거운 달
-비 듣는 가을나무
-추억에서
-거기 누가 부르는가
-아득하면 되리라
-간절한 소망
-내 사랑은[시조집]
-대관령 근처
-찬란한 미지수
-가을 바다
-바다 위 별들이 하는 짓
-박재삼 시집
-사랑, 그리움 그리고 블루편
-사랑이여
-가을바다
-기러기 마음을 나는 안다[편]
-햇볕에 실린 곡조
-해와 달의 궤적
-꽃은 푸른빛을 피하고
-허무에 갇혀
-나는 아직도
-다시 그리움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남기고
-박재삼 시선집
(해설)
박재삼(1933~1997)은 생전에 ‘슬픔의 연금술사‘로 불린 시인이다. 시 ‘눈물 속의 눈물‘에서 “꽃잎 속에 새 꽃잎/ 겹쳐 피듯이// 눈물 속에 새로 또/ 눈물 나던 것이네“라고 노래했듯이 그의 시들은 눈시울이 촉초근하게 젖어 있다. 박재삼 시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이 시는 노을이 붉게 번지는, 굽이쳐 흐르는 강을 산등성이에서 내려다보며 썼을 것이다. ‘눈물‘과 ‘울음‘과 ‘강‘과 ‘산골 물‘과 ‘바다‘로 연결되는 물의 이미지는 누선(淚腺)을 자극하고, ‘햇볕‘과 ‘불빛‘으로 연결되는 불의 이미지는 삶의 소진과 소멸을 두드러지게 하는 바, 이 시는 사랑의 비극과 고독과 생(生)의 무상(無常)을 동뜨게 드러낸다.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이라는 표현은 “뉘가 알리, 어느 가지에서는 연신 피고/ 어느 가지에서는 또한 지고들 하는/ 움직일 줄을 아는 내 마음 꽃나무“(‘자연(自然)’)라는 표현과 쏙 빼닮았다. ‘눈물나고나‘와 ‘보것네‘ 등의 종결어미에서는 그의 다른 시편에서도 예사인 전통적인 가락의 활용을 보여준다. 이 시가 처음 월간지에 발표된 후 박두진 시인은 “노도(怒濤)처럼 세찬 현대의 휩쓸림 속에서 배추 꽃목처럼 목이 가늘고 애잔한, 실개천처럼 맑고도 잔잔한 서정“이라고 평해 신예 박재삼을 주목했다. 박재삼 시의 가옥을 떠받치는 두 기둥인 ‘한‘과 ‘가락‘의 능수능란한 구사는 그가 자라난 생활환경과 관련이 있다. 일본 동경에서 태어나 막노동을 하는 아버지와 생선 장사를 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집이 가난해서 낮에는 중학교 급사로 일하면서 야간반에서 수학을 했다. 집 형편이 옹색해 책을 살 수 없어 ‘가람시조집‘을 빌려다 공책에 베껴 쓰고 늘 외웠고, 중학 시절 김상옥 시인의 작문 지도를 받으면서 전통시의 낭창낭창한 가락에 눈떴다. 병을 얻어 직장을 그만둔 후로는 시를 쓰고 신문에 바둑 관전평을 써서 생계를 꾸렸다. ‘요석자(樂石子)’라는 이름으로 바둑 관전평을 썼는데 바둑계에서는 그를 ‘박국수(朴國手)’라고 불렀다. 병을 앓고 난 후, 가난한 시인은 새봄을 맞는 소회를 썼다. “눈여겨 볼 것이로다, 촉트는 풀잎,/ 가려운 흙살이 터지면서/ 약간은 아픈 기(氣)도 있으면서/ 아, 그러면서 기쁘면서…/ 모든 살아 있는 것이/ 형(兄)뻘로 보이는 넉넉함이로다.”(‘병후(病後)에‘) 그러니 우리네 삶이 ‘햇볕 반(半) 그늘 반(半)’이라 하더라도 오늘 당신은 글썽임보다 반짝이는 쪽을, 촉트는 생동(生動)을 보아라.
(참고자료) –일간『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60』(조선일보 연재, 2008)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에는 연 구분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