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창시(61) 노동의 새벽(1984) 박노해(1957년 ~)

애창시(61)

 

노동의 새벽(1984)          박노해(1957년 ~ )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가운 소주를 붓는다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이러다간 끝내 오래 못가지

설을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가도
끝내 못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쳐신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스린 가슴 위로
차가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줏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시인 박노해 사진)
(시인 박노해 사진) (Naver image에서 발췌)

 

 

(작가) 박노해 시인

1957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나 고흥벌교에서 자랐다. 16세 때 상경하여 낮에는 노동자로 생활하고 밤에는 선린상고(야간)를 다녔다. 1984년 스물일곱 나이에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출간했다군사독재 정부의 금서 조치에도 100만 부 가까이 발간된 이 한 권의 시집은 당시 잊혀진 계급이던 천만 노동자의 목소리가 되었고젊은 대학생들을 노동현장으로 뛰어들게 하면서 한국 사회와 문단을 충격으로 뒤흔들었다감시를 피해 사용한 박노해라는 필명은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이라는 뜻으로이때부터 얼굴 없는 시인으로 알려졌다. 1989분단 이후 사회주의를 처음 공개적으로 천명한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을 결성했다. 7년여의 수배생활 끝에 1991년 체포참혹한 고문 후 사형이 구형되고 무기징역에 처해졌다옥중에서 1993년 두 번째 시집 『참된 시작』과 1997년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출간했다. 1998년 7년 6개월의 수감 끝에 석방되었다이후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되었으나 국가보상금을 거부했다.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스스로 사회적 침묵을 하며, 2000년 생명 평화 나눔을 기치로 한 사회운동단체 <나눔문화 (www.nanum.com)>를 설립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터에 뛰어들면서 아프리카중동아시아중남미 등 가난과 분쟁 현장에서 평화활동을 이어왔다낡은 흑백 필름 카메라로 기록해온 사진을 모아 2010년 첫 사진전 <라 광야>展과 <나 거기에 그들처럼>(세종문화회관)을 열었다. 304편의 시를 엮어 12년 만의 신작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출간했다. 2014년 박노해 아시아 사진전 <다른 길>展 (세종문화회관개최와 함께 사진에세이 『다른 길』을 출간했다. 2017년 『촛불혁명-2016 겨울 그리고 2017 빛으로 쓴 역사』(감수)를 출간했다오늘도 국경 너머 인류의 고통과 슬픔을 끌어안고세계 곳곳에서 자급자립하는 삶의 공동체인 나눔농부마을을 세워가며 새로운 사상과 혁명의 길로 걸어가고 있다.

 

 

(해설)

박노해 노동의 새벽 20주년 헌정음반‘(2004)을 들으며 시집 노동의 새벽‘(1984)을 읽는다장사익윤도현 밴드, NEXT 등이 노동의 새벽‘ 시편들에 곡을 붙여 노래한 앨범이다. ‘노동의 새벽은 어두운 새벽빛의 표지다. “노동형제들에게 조촐한 술 한 상으로 바칩니다라는 시인의 헌사로 시작하고 있다. ‘노동해방을 줄여 필명으로 삼은 얼굴 없는 노동자 시인‘ 박노해(50)의 시에독설로 민중문학론을 설파했던 고(채광석의 기획 및 해설과민중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고(오윤의 판화가 어우러져 사회과학 출판사 풀빛에서 출간된 시집이다. ‘노동과 해방과 문학의 접점에서 생산되고 소비되었던 이 시집은 1980년대를 대표하는 한 상징이다금서(禁書)로 노동문학의 전범이 되었고판매량이 100만부로 추정되고 있으며지난 20년간 우리 사회의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친 책 중 한 권이 되었다.

이 시는 시대의 새벽을 부른‘ 박노해의 명실상부한 대표시다조출(조기출근)-야근(야간잔업)의 노동현실에서 야근현장은 졸음과 사투를 해야 하는 전쟁터다. “드르륵 득득미싱을 타고꿈결 같은 미싱을 타고두 알의 타이밍으로 철야를 버티는시다의 언 손“(‘시다의 꿈‘)으로조는 순간 기계 사이에 끼어 아직 팔딱거리는 손을기름먹은 장갑 속에서 꺼내“(‘손 무덤‘)야 하는 무참한 사고 없이 무사히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이면 속이 빈 쓰린 가슴에 차거운 소주를 부을 수밖에. ‘어쩔 수 없는‘ 분노와 슬픔 때문에 붓고, ‘기어코의 깡다구와 오기의 힘으로 붓는다고통과 절망을 위무하기 위해 붓고연대와 희망을 고무하기 위해 붓는다차가운 소주가 뜨거운 소주로 변하는 노동자의 햇새벽식히기 위해 붓고 태우기 위해 붓는다.

그는 열다섯에 상경해 야간 상고를 졸업하고 섬유·화학·건설·금속·운수 노동을 하며 노동운동과 노동문학에 투신했다. ‘사노맹(남한 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으로 체포되어 반국가단체 수괴로 무기징역이 선고되자 나는 노동자이자 시인이며 혁명가입니다라는 최후진술로 스스로를 변호했다지금은 세계의 빈곤 지역과 분쟁 지역을 돌며 생명과 평화와 나눔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수감 중에 썼다는 시 그 해 겨울나무가 떠오른다. “그해 겨울,/ 나의 시작은 나의 패배였다로 시작해 그해 겨울,/ 나의 패배는 참된 시작이었다로 끝을 맺는다.

(참고문헌)
일간『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61(조선일보 연재, 2008)
(『노동의 새벽』풀빛. 1984)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편집인(편집부 2000hansol@hanmail.net)

 

Recent Articles

spot_img

Related Sto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