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창시(62) 눈물(1957) 김현승(1913 ~ 1975)

애창시(62)

 

눈물(1957)               김현승(1913 ~ 1975)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生命)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全體)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들이라 하올제,

나의 가장 나아중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시인 김현승
시인 김현승 사진 (google image에서 발췌)

 

 

(시인 김현승)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다형(茶兄). 평양 출생기독교 장로교목사인 아버지 김창국(金昶國)과 어머니 양응도(梁應道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생애 및 활동사항)
아버지의 목회지(牧會地)를 따라 제주시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7세 되던 해에 전라남도 광주로 이주하여 기독교계통의 숭일학교(崇一學校)와 평양의 숭실중학교를 졸업하고, 1936년 숭실전문학교 문과 3년을 수료하였다.

그 뒤 모교인 숭일학교 교사(1936), 조선대학교 교수(19511959), 숭전대학 교수(19601975),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1970) 등을 역임하였다문단활동은 숭실전문학교 재학 때 장시(長詩「쓸쓸한 겨울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이 양주동(梁柱東)의 추천으로 『동아일보』(1934)에 게재되면서부터 시작된 이후낭만적 장시 「새벽은 당신을 부르고 있읍니다」(1934)·「새벽 교실(敎室)」 등을 계속 발표하였다.

1953년부터 광주에서 계간지 『신문학(新文學)』을 6호까지 간행하였으며이때의 시로 「내가 나의 모국어(母國語)로 시()를 쓰면」(1952)이 있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정신과 인간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내용을 시로 형상화하여 독특한 시세계를 이루었다1시집 『김현승시초(金顯承詩抄)(1957)와 제2시집 『옹호자(擁護者)의 노래』(1963)에 나타난 전반기의 시적 경향은 주로 자연에 대한 주관적 서정과 감각적 인상을 노래하였으며점차 사회정의에 대한 윤리적 관심과 도덕적 열정을 표현하였다.

그가 추구하는 이미지들의 특징은 가을의 이미지로 많이 나타나는데덧없이 사라지는 비본질적이고 지상적인 가치를 상징하는 꽃잎·낙엽·재의 이미지와본질적이며 천상적인 가치를 상징하는 뿌리·보석·열매의 단단한 물체의 이미지의 이원적 대립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표현한 시적 방법의 특징은 절제된 언어를 통하여 추상적 관념을 사물화(事物化)하거나구체적 사물을 관념화하는 조소성(彫塑性)과 명징성(明澄性)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후기 시세계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제3시집 『견고(堅固)한 고독』(1968)과 제4시집 『절대(絶對)고독』(1970)의 시세계는 신에 대한 회의와 인간적 고독을 시적 주제로서 줄기차게 추구함을 보여준다.

1974년에는 『김현승전시집(金顯承全詩集)』을 펴냈고유시집(遺詩集『마지막 지상(地上)에서』(1977), 산문집 『고독(孤獨)과 시()(1977)가 간행되었다문학개설서로는 『한국현대시해설』(1972)이 있다.

 (상훈과 추모)
1955년 제1회전라남도문화상, 1973년 서울시문화상을 받았다광주 무등산도립공원에 그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김광규

 

(해설)

이 시는 1957년에 펴낸 김현승(1913~1975)의 첫 시집 김현승시초에 실려 있다시집의 장정을 서정주 시인이 맡았다고 되어 있고가격은 육백환이라 적혀 있다시인은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를 주선하여 준 서정주 시백의 우의에 깊이 감사를 드린다고 자서에 썼다서정주 시인은 김현승 시인에 대해 사람 사이의 정()에 철저했던 그는 정의감을 큰 것이건 작은 것이건 고수하는 데서도 철저했던 것인데이것은 그의 고독(孤獨)의 원인일 것이다라고 평가해 친근한 사이임을 자랑했다.

어린 자식을 잃은 참혹한 슬픔을 노래한 시들은 많다김광균의 시 은수저가 그렇고정지용의 시 유리창이 그렇다김광균은 저녁 밥상에 애기가 없다./ 애기가 앉던 밥상에 한 쌍의 은수저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라고 썼고정지용은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아아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라고 썼다.

아들을 잃고 난 후 창작한 것으로 알려진 시 눈물은 독실한 기독교 신앙에 의지해 그 슬픔을 넘어선다. ‘들이라 하올제의 대상이나 당신은 그가 신앙한 절대자였다그는 눈물이야말로 한 점 생명의 씨앗과도 같고더러움이 없으며인간의 마음이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 순금처럼 지니고 살아야 할 것으로 보았다일시적이고 가변적인 웃음보다는 영혼을 정결하게 하는 눈물을 귀하게 보았다눈물의 참회 이후 인간이 지니게 될 순수하고 진실한 양심을 옹호했다이 시가 기독교적 신앙시의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그가 정작 염원한 것은 더 심오한 가치였다그는 스스로 밝히길 나는 또한 신앙에 순응하기만 하는 시인은 아니다라며 떳떳하고 참되고 올바른 인간정신을 나의 시에 스며들게 하는 데 더 큰 가치를 느낀다고 했다.

눈물이 너무 흔해서 아무래도 천국엘 못 갈 것 같다고 한 김현승 시인의 자화상은 어떠했을까. “내 목이 가늘어 회의에 기울기 좋고“, “연애엔 아주 실망(失望)이고” “눈이 커서 눈이 서러워,/ 모질고 싸특하진 않으나,/ 신앙과 이웃들에 자못 길들기 어려운 나“(‘자화상‘)라고 써 본인의 내·외형적인 기질의 근사치를 내놓았다.

현대시 100년의 역사에서 김현승 시인처럼 고독과 슬픔을 지독하게 노래한 시인도 드물다. ‘싸늘한 증류수의 시대를 살다간 그에게 고독과 슬픔과 뜨거운 눈물은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것이었다. “슬픔은 나를목욕시켜준다,/ 나를 다시 한 번 깨끗게 하여준다며 슬픔 안에 있으면나는 바르다!”고 썼을 정도로숭전대학교(현 숭실대학교채플 시간에 기도 중 쓰러진 뒤 병석에서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눈물의 옹호자였던 시인은 영혼의 옷마저 벗고 우리 곁을 떠났다

(참고문헌)

『지상의 척도』(김우창민음사, 1981)

「사라짐과 영원성김현승의 시세계(곽광수『한국현대시문학대계』 17, 지식산업사, 1982)

「견고에의 집념」(김종길『창작과 비평』, 1968 여름호)

[네이버 지식백과김현승 [金顯承]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일간『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62(조선일보 연재, 2008) 

 

편집인(편집부 2000hans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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