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창시(63) 그리스도 폴의 강(江) 1(1977) 구상(1919 ~ 2004)

애창시(63)

 

그리스도 폴의 강() 1(1977)     구상(1919 ~ 2004)

아침 강에
안개가
자욱 끼어 있다
피안(彼岸)을 저어 가듯
태백(太白)의 허공속을
나룻배가 간다.
기슭백양목(白楊木가지에
까치가 한 마리
요란을 떨며 날은다.
물밑이 모래가
여인네의 속살처럼
맑아 온다.
잔 고기떼들이
생래(生來)의 즐거움으로
노닌다.
황금(黃金)의 햇발이 부서지며
꿈결의 꽃밭을 이룬다.
나도 이 속에선
밥 먹는 짐승이 아니다

 

시인 구상의 사진
시인 구상의 사진 (임응식-1979.국립현대미술관소장에서 옮김)

 

 

(시인 구상)

본명 구상준(具常浚). 서울 종로구 이화동 642번지 출생.

본적은 경북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 789번지이나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서 출생했다. 1923년 아버지의 교육사업을 위해 함경남도 문천군 덕원리(원산시 근교)로 이주를 했다. 1938년원산 덕원 성베네딕도 수도원 부설 신학교 중등과를 수료했고, 1941년일본대학 전문부 종교과를 졸업했다.

1942년∼1945년까지 함흥의 북선 매일신문사 기자로 활동했으며, 1946년원산 문학가동맹이 펴낸 해방기념시집 『응향』에 실은 「여명도」「길」「밤」 등 세 편의 작품이 필화를 겪었다당시 북한에서는 언론매체를 활용하여 구상 시를 규탄하는 내용을 실었고원산과 각 지방의 문학가동맹으로 검열이 확대되었다구상의 시는 백인준에 의해 예술지상주의적퇴폐주의적악마주의적부르주아적반인민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947년 2월 원산을 탈출하여 월남하였다『응향』사건이 남쪽 문학가동맹 기관지에서 다뤄지자 당시 민족진영의 김동리조연현곽종원임긍재 등이 반론을 주장했다구상 시인은 『해동공론』(최태응 편집)에 「북조선 문학 여담」으로 필화사건을 발표했고『백민』에 「발길에 채운 돌멩이와 어리석은 사나이와」라는 시를 발표하면서 창작활동을 시작하였다.

1949년 육군정보국의 『북한특보』 편집책임을 맡았으며북한으로 비밀리에 보내는 「봉화」를 제작, 1950년 한국전쟁 때 정훈국으로 옮겨와 국내외 상황과 전투의 전과를 알리는 인쇄물 『승리』(국방부 기관지 『승리일보』의 전신)를 제작하였다.

1952년『승리일보』가 폐간되면서 영남일보사의 주필 겸 편집국장이 되어 반공전쟁을 옹호하고 독재를 반대하는 논설을 펴 부산에서 압수당하는 사건도 몇 차례 발생했다이승만 정권의 독재를 비판한 내용이 담긴 사회평론집 『민주고발』은 판매금지를 당하기도 했다반공법 위반으로 15년이 구형되었으나 무죄를 인정받았지만 6개월간의 감옥생활을 해야 했다이후 구상시인은 정치참여의 기회를 모조리 물리친다.

1952년부터 1999년까지 효성여대서울대서강대하와이대카톨릭대중앙대 등에서 교수생활을 했으며 1959년 조작된 간첩사건에 연루된 이후 정치와 거리를 둔 구상시인은 문학창작과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1955년 대구매일신문사 상임고문시절최석채 주필의 사설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글의 정정과 필자해임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정치깡패를 동원해 인쇄기를 파손한 사건이 일어난다구상은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민주적인 정치를 이끌어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의의와 평가)

기독교적 세계관이 작품 중심에 놓여 있으며 자기고백과 성찰이 주요한 특징을 이룬다역사적 격변기를 살았던 구상의 문학활동은 한국전쟁의 갈등과 이데올로기의 선택문제에 노출되어 있었다시집 『응향』으로 필화사건을 겪고 월남을 선택했던 구상 시인은 한국전쟁기에는 대북심리전 요원으로 활동『북한특보』『봉화』『승리』 등의 인쇄물 제작에 참여하면서 종군작가로서 활동하였다한국전쟁문학에서 구상의 작품은 전쟁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전쟁문학이 왜 반전문학으로 가야 하는 가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되고 있다.

(상훈과 추모)

1955년 금성화랑 무공훈장
1957년 서울시 문화상
1970년 국민훈장 동백장
1980년 대한민국 문학상 본상
1993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2004년 금관문화훈장

 

 

(해설)

구상 시인은 강과 물을 유난히 사랑했던 시인이다당호를 관수재(觀水齋)라 하고 서재에 관수세심(觀水洗心)’이라는 편액을 걸어놓고는그 글귀대로 여의도 윤중제방에 나아가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을 바라보며 마음을 씻어내곤 했다()와 심()은 통하는 글자이기에 관수(觀水)와 세심(洗心)은 마음을 바라보는‘ 일인 바, “마치 매일예배를 보듯나는 오늘도 강에 나와 있“(‘겨울강 산조(散調)’)곤 했던 것이리라.

무릇 물은 맑다흐르면서 넓어지고끊이지 않고거슬러 오르지도 않는다무엇이든 그 밑바닥으로 흘러들고다른 무엇에 스며들었을 때에는 이미 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물이었다./ 맑은 물이었다./ 맑은 물이 하염없이흘러가고 있었다.// 흘러가면서 항상 제자리에 있었다./ 제자리에 있으면서순간마다 새로웠다.// 새로우면서 과거와이어져 있었다.”(‘그리스도 폴의 강 11′). 강에서 사람을 업어 건네는 수행을 통해 예수 발현(發顯)을 체험했던 성자 그리스도 폴의 강처럼시인에게 강은 건너가야 하는 삶의 터였으며 구도의 방편이자 사랑의 궁극이었을 것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이기에오늘이 바로 영원이고 오늘 하루가 신비의 샘이다오늘 시방 그 영원을 살고 있기에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하고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하는(‘오늘‘) 것이리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너의 앉은 그 자리가바로 꽃자리“(‘꽃자리‘)인 것이리라그러니 내가 앉아 있는 지금여기의 꽃자리가 반갑고 고맙고 기쁠‘ 수밖에그는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파랑(波浪많은 삶을 살았지만 그의 시편들은 고요한 강물처럼 조용하고 편안하다진솔하고 정갈하다그의 삶도 시와 다르지 않았다.

이 시는 아침 강의 신비와 신성을 노래하고 있다자욱한 아침 안개는 물과 하늘여기와 저기차안과 피안의 경계를 지운 채 세계를 하나의 허공으로 만들고 있다그 허공 속을 저어 가는 나룻배는 이미 비승비속(非僧非俗)이다구불구불 휜 흰 백양목 가지에 앉은 검은 까치 한 마리여인네 속살 같은 물밑의 모래생래의 즐거움으로 노니는 잔 고기떼동터오는 황금의 햇발은 인간이 침범하지 않는 태고(太古)적 아침 강의 이미지들이다이런 강을 마음에 품고 하루의 아침을 시작한다면매일 매일의 밥벌이 터에서도 밥 먹는 짐승으로 전락하지 않을 것 같다.

 (참고자료)

[네이버 지식백과구상 [具常]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일간『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63(조선일보 연재, 2008)

편집인(편집부 2000hans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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