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창시(64)
섬진강 1(1985) 김용택(1948 ~ )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하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걸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시인 김용택)
출생지: 국내 전라북도 임실
데뷔: 1982. 창작과 비평사의 21인 신작시집에 연작시 「섬진강」을 발표
전북 임실 출생. 순창농림고교 졸업 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였고, 전북작가회 회장, 전북환경운동 공동의장 등을 역임했다. 2008년 덕치초등학교에서 30년간의 교사 생활을 마치고 퇴임했다. 1982년 창작과 비평사의 『21인 신작시집』에 연작시 「섬진강」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하였다. 그의 초기시는 대부분 섬진강을 배경으로 농촌의 삶과 농민들의 모습을 정감있게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연작시 「섬진강」의 경우, 시적 서정성만이 작품의 지배적인 정조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농민들의 일상이 조밀하게 사실적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현실의 각박한 변화와 농촌의 퇴락을 비판과 풍자의 시선으로 지켜보기도 한다. 이 연작시는 첫 시집 『섬진강』(1985)을 통해 묶이면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김용택의 시적 경향은 보다더 직관적이면서도 깊이있는 정서를 담는 격조 있는 서정시로 변모하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특히 소월시문학상의 수상작이 된 시 「사람들은 왜 모를까」와 같은 작품에 이르면 더욱 분명하게 하나의 시적 개성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가 다루고 있는 시적 언어의 소박성과 그 진실한 울림은 토속적인 공간으로서의 농촌이 지니는 전통적인 가치와 새로운 현대적 변화를 연결해주는 정서적 감응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일상의 체험을 시적 대상으로 하면서도 그 소탈함과 절실함을 동시에 긴장감 있게 엮어내는 시적 상상력은 독자적인 시적 경지를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그가 부박한 모더니즘에 휩싸이지 않고, 격정적 이념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정서적 균형과 언어적 절제를 지키면서 아름다운 시로써 독자들을 감동시키고 있는 점은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첫시집 『섬진강』(1985) 이후 『맑은 날』(1986), 『꽃산 가는 길』(1988), 『누이야 날 저문다』(1988), 『그리운 꽃 편지』(1989), 『그대, 거침없는 사랑』(1993), 『강 같은 세월』(1995), 『마당은 비뚤어졌어도 장구는 바로 치자』(1996), 『그 여자네 집』(1998), 『콩, 너는 죽었다』(1998), 『그리운 꽃편지』(1999), 『누이야 날이 저문다』(1999), 『나무』(2002), 『연애시집』(2002), 『그대 거침없는 사랑』(2003), 『그래서 당신』(2006),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것이다』(2008), 『수양버들』(2009),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2013) 등을 간행하였다.
섬진강을 배경으로 들려주는 어린이 동화집과 글쓰기에 관한 책도 많이 펴냈다. 시 해설집 『시가 내게로 왔다』(2001)를 비롯하여 산문집 『김용택의 어머니』(2012), 『김용택의 교단일기』(2013), 『내가 살던 집터에서』(2013), 『살구꽃이 피는 마을』(2013) 등이 있다. 1986년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1997년 소월시문학상, 2012년 윤동주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학력사항 : 순창농림고등학교(졸업)
경력사항:
~ 2008년 초등학교 교사
전북작가회 회장
전북환경운동 공동의장
수상내역:
1986년 김수영문학상
1997년 소월시문학상
2012년 윤동주문학상
(작품목록)
– 섬진강
– 맑은 날
– 꽃산가는 길
– 누이야 날이 저문다
– 그리운 꽃편지
– 그대, 거침없는 사랑
– 강 같은 세월
– 마당은 비뚤어졌어도 장구는 바로 치자
– 그 여자네 집
– 콩, 너는 죽었다
– 그리운 꽃편지
– 누이야 날이 저문다
– 나무
– 사람들은 왜 모를까
(해설)
그를 80년대 대표적 농촌시인으로 우뚝 서게 한 섬진강 연작시는 섬진강변의 새와 풀꽃과 흙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가득 담고 있다. 그에게 섬진강이라는 공간은 “치마폭에 쌓이는 눈물을/ 강물에 가져다 버리“(‘섬진강 2′)는 누이가 살던 곳이요, “강 건너 산밭에 하루 내내 스무 번도 더 거름을 져 나르“면서 “해 저문 강 길을 홀로 어둑어둑 돌아오시는 어머니“(‘섬진강 9′)가 살아온 곳이요, “누구는 이라자라 쟁기질 잘하고/ 소 잘 다루고/ 누구는 선일 잘하고/ 모 잘 심고 써레질 잘하고“(‘섬진강 13′) 그리하여 다 사람 구실을 하고 인심에 변동이 없는 곳이다.
이 시는 섬진강 연작시의 말머리 시이다. 생명들의 이마에 꽃등을 달아주는 생명의 젖줄 섬진강을 노래했다. 지도에도 없지만 그네들만은 서로 아끼고 챙겨가며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사는 곳, 일어서서 껄껄 웃는 지리산과 훤한 이마 끄덕이는 무등산을 부모처럼 이웃처럼 모시고 사는 곳, 그런 큰 산들의 역사와 함께 살아온 까닭에 지금껏 마른 적 없는 도도한 흐름이 있는 곳, 크고 굳세고 건강한 살림 공동체…….
섬진강 연작시에는 시골 사람들의 투박한 입담이 들꽃처럼 곳곳에 피어 있다. ‘너무 그리 말더라고‘ 등의 전라도 방언과 ‘저런 오사럴 놈들‘ 같은 상말을 구사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툭 터놓고 말하는 그의 시는 맑고 정직하다. “나는 내 이웃들의 농사에/ 내 손이 희어서 부끄러웠고/ 뙤약볕 아래 그을린 농사군들의/ 억울한 일생이/ 보리꺼시락처럼 목에 걸려/ 때로 못밥이 넘어가지 않아/ 못 드는 술잔을 들곤 했다“(‘길에서‘)는 고해성사와도 같은 자기고백을 보라. 그럼으로써 “우리 어매 날 낳아/ 가난한 일 속에 날 기른/ 헐벗은 젖가슴 같은 산천“(‘섬진강 27′)을 다 노래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다. 그럼으로써 그는 “아직도 두 눈 시퍼렇게 부릅뜨고/ 땅을 파는/ 농군“(‘마당은 비뚤어졌어도 장구는 바로 치자‘)의 편에 섰다. 살 아프고 맘 아픈 그들의 편에 서서 환장할 것 같은, 기가 차고 어안이 벙벙한 농촌의 현실을 다 발언했다.
그의 시에서는 포슬포슬한 흙냄새가 난다. 그의 시를 통해 은어 떼가 헤엄치는 푸른 강과 넓디넓은 평야를 본다. 가슴이 넓어지고 따뜻하다.
(참고문헌)
[네이버 지식백과] 김용택 [金龍澤]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일간『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64』(조선일보 연재, 2008)
(『섬진강』. 창작과비평사. 1985)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편집인(편집부 2000hanso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