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창시(66) 의자(2006) 이정록(1964~ )

애창시(66)

 

의자(2006)         이정록(1964~)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이정록
시인 이정록 사진 (google image에서 발췌)

 

 

(약력) (1964년생 ~ )

1989년 <대전일보신춘문예와 1993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가각 시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진출하게 된다시집으로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 [제비꽃 여인숙], [의자가 잇으며장편동화로 [귀신골 송사리], 십 원짜리 똥탑]이 있다.

심수영문학상(2001), 김달진문학상(2002)을 수상하였다.

 

 

(해설)

 이 시를 읽고 있으면 미국의 대표적인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이 생각난다노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으니나는 풀이 더 많고 사람이 다닌 발자취가 적은 외로운 길을 선택해서 걸어갔노라고 쓴 시그리고 그런 선택으로 인하여 나에게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쓴 시.

이 아침에도 우리의 목전(目前)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놓여 있다낯익고 평탄한 길이 있고그렇지 않은 길이 있다소의 잔등처럼 유순하고 완만하고 반듯해진 길이 있고나아갈 틈이 없는 가시넝쿨을 헤치듯 누군가 처음으로 개시(開示)해야 하는 길도 있다그러나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인 우리는 각지고 불규칙한 길보단 대열의 후미에서 앞의 궤적을 뒤따라가고 싶어진다은근슬쩍 길들여졌으므로이 순응을 등지고 뒤집는 일은 엄두를 못 낼 정도로 어렵다.

이 시는 우리 마음에 악착스레 붙어사는 순응주의를 되돌아보게 한다보통 사람들의 비겁과 안일에 대해 울화통을 터뜨린다앞선 행로에 기생하여 꼬리를 물고 뱅뱅‘ 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야멸치게 묻는다좌충우돌이면 어떠냐고뒤죽박죽이면 어떠냐고 묻는다풍파(風波), 그것이 우리들 삶의 표정이며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므로 안주(安住)하려 하거나 상처받지 않으려 하지 말라고 호통을 친다그러나이 야유는 좀 불편하다. “병 대신 병적인 것아픔 대신 아픔적인 것애인 대신 애인적인 것에서 우리는 위안받는다“(‘행복하게 살기 위하여‘). 그래서 만만히 볼 수 없는 이런 맹랑한 발언은 우리들의 속을 긁어 놓는다.

이 시가 실려 있는 김중식(41) 시인의 첫 시집 황금빛 모서리의 시편들은 길들여진 우리의 일상과 사고를 전복하려는 노력을 줄기차게 보여준다그의 시에는 우회(迂廻)가 없다그는 스스로 자초하는 존재들의 억센 자유의지를 격려한다시집 뒤표지 글은 이렇게 썼다. “자기 삶을 방목(放牧)시킨 그를 나는 존경한다자기 삶의 주인이기 때문이다그러나 방목된 삶은 야생마처럼 갈기를 세우고 주인의 울타리를 넘어서려 한다그 고투의 흔적이 역력한 그의 연보를 읽을 때 나는 열등감을 느낀다.”

사는 일이 지치고 가야 할 길이 막막할 때 스스로를 이렇게 불러보자. “주인공아!” 생념(生念)이라 했으니 엄두를 내보자박약한 의지를 다시 일으켜 세워보자당신은 당신의 삶의 후견인(後見人). 아무도 간 적 없는 길을 당신이 앞서가고 앞서간 당신을 당신이 뒤따라가는 것야단법석인 이 삶을 살아 가야 할 주인공아

(참고문헌)
―일간『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66(조선일보 연재, 2008)

 

편집인(편집부 2000hans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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