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창시(68)
이탈한 자가 문득(1993) 김중식(1967~ )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약력) (1967년생 ~ )
1993년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출신 김중식이 발표한 시집.
시집 『황금빛 모서리』는 1967년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태어나, 1990년에 『문학과 사상』에 추천되어 나온 시인 김중식이 시인으로 문명(文名)을 얻은 최초의 시집이다. 이 시집에 있는 많은 시들 중에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이라는 시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과 관련이 있다.
1993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출간된 김중식의 시집 『황금빛 모서리』는 자서(自序)와 64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다. 64편의 시들 중에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에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 있는 옐로우 하우스가 작품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을 보면 시적 화자의 집이 옐로우 하우스 33호 붉은 벽돌 건물 바로 앞에 있다. 시적 화자는 자신의 집이 옐로우 하우스보다 더 못하고, 옐로우 하우스로 들어가는 사내들보다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는 사내들이 더 허기져 보인다고 고백한다. 김중식의 시는 고백을 하는 시이다. 심지어 화자는 자신의 존재가 유곽에서 일하는 아가씨보다 못하다고 고백한다. 주변 사람들로부터는 대학까지 나온 놈이 놀고먹고 있다는 비난을 듣는다. 또한 단칸방에서 온 가족이 함께 보내야 하는 생활의 고단함을 고백한다. 여동생들이 남자 친구가 집까지 바래다주겠다고 할 때 얼마나 어렵게 거절을 했을지 상상도 해 본다. 이런 집을 떠나 보아도 결국 세상의 끝에 있는 집이기 때문에 화자는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다. 희망을 그 집에서 발견한다.
김중식은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에서 옐로우 하우스 근처에 있는 시적 화자의 집을 시적 화자가 처한 암담한 상황의 상징으로서 제시한다. 옐로우 하우스의 여자들의 처지와 비교하는 것으로 화자의 상황이 얼마나 암담한지 강조한다. 시인은 이 시에서 세상 끝에 간들간들 매달려 있는 삶의 곡예를, 그곳까지 밀고 갈 수밖에 없는 삶의 상처를 보여 준다. 그 상처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옐로우 하우스의 상처와 닮아 있다.
김중식의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의 옐로우 하우스를 시적 장소로 택한다.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은 옐로우 하우스가 가지는 지리적 상징성을 훌륭하게 살린 시이다. 옐로우 하우스의 비참한 상황과 자신의 비참한 상황을 대비해서 시의 주제를 심화한다. 시적 화자는 이런 장소를 던져 버리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도 다시 그곳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삶의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다. 옐로우 하우스 같은 그의 집은 그래도 희망의 장소인 것이다. 그의 고백은 단순한 자책이 아닌 회의적 고백이다. 이런 회의를 뛰어넘는 지점이 바로 황금빛 모서리를 발견한 지점이다. 이런 점에서 이 시는 절망이 아닌 인생의 ‘황금빛 모서리’를 보여 준다.
(해설)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1993년)
이 시를 읽고 있으면 미국의 대표적인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이 생각난다. 노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으니, 나는 풀이 더 많고 사람이 다닌 발자취가 적은 외로운 길을 선택해서 걸어갔노라고 쓴 시. 그리고 그런 선택으로 인하여 나에게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쓴 시.
이 아침에도 우리의 목전(目前)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놓여 있다. 낯익고 평탄한 길이 있고, 그렇지 않은 길이 있다. 소의 잔등처럼 유순하고 완만하고 반듯해진 길이 있고, 나아갈 틈이 없는 가시넝쿨을 헤치듯 누군가 처음으로 개시(開示)해야 하는 길도 있다. 그러나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인 우리는 각지고 불규칙한 길보단 대열의 후미에서 앞의 궤적을 뒤따라가고 싶어진다. 은근슬쩍 길들여졌으므로, 이 순응을 등지고 뒤집는 일은 엄두를 못 낼 정도로 어렵다.
이 시는 우리 마음에 악착스레 붙어사는 순응주의를 되돌아보게 한다. 보통 사람들의 비겁과 안일에 대해 울화통을 터뜨린다. 앞선 행로에 기생하여 ‘꼬리를 물고 뱅뱅‘ 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야멸치게 묻는다. 좌충우돌이면 어떠냐고, 뒤죽박죽이면 어떠냐고 묻는다. 풍파(風波), 그것이 우리들 삶의 표정이며,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므로 안주(安住)하려 하거나 상처받지 않으려 하지 말라고 호통을 친다. 그러나, 이 야유는 좀 불편하다. “병 대신 병적인 것, 아픔 대신 아픔적인 것, 애인 대신 애인적인 것에서 우리는 위안받는다“(‘행복하게 살기 위하여‘). 그래서 만만히 볼 수 없는 이런 맹랑한 발언은 우리들의 속을 긁어 놓는다.
이 시가 실려 있는 김중식(41) 시인의 첫 시집 ‘황금빛 모서리‘의 시편들은 길들여진 우리의 일상과 사고를 전복하려는 노력을 줄기차게 보여준다. 그의 시에는 우회(迂廻)가 없다. 그는 스스로 자초하는 존재들의 억센 자유의지를 격려한다. 시집 뒤표지 글은 이렇게 썼다. “자기 삶을 방목(放牧)시킨 그를 나는 존경한다. 자기 삶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목된 삶은 야생마처럼 갈기를 세우고 주인의 울타리를 넘어서려 한다. 그 고투의 흔적이 역력한 그의 연보를 읽을 때 나는 열등감을 느낀다.”
사는 일이 지치고 가야 할 길이 막막할 때 스스로를 이렇게 불러보자. “주인공아!” 생념(生念)이라 했으니 엄두를 내보자. 박약한 의지를 다시 일으켜 세워보자. 당신은 당신의 삶의 후견인(後見人). 아무도 간 적 없는 길을 당신이 앞서가고 앞서간 당신을 당신이 뒤따라가는 것. 야단법석인 이 삶을 살아 가야 할 주인공아
(참고문헌)
강상희, 「사막 가는 길, 자유의 길–따듯한 비관주의자를 이해하기 위하여」(『황금빛 모서리』, 문학과 지성사, 1993)
김중식, 『황금빛 모서리』(문학과 지성사, 1993)
[네이버 지식백과] 『황금빛 모서리』 [黃金-]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일간『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68』(조선일보 연재,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