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창시(81) 보리피리(1955) 한하운(1920~1975)

애창시(81)

 

보리피리(1955)                       한하운(1920~1975)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還)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ㄹ 닐니리.

 

한하운
시인 한하운 사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발췌)

 

 

(작가 한하운)
〈보리피리〉의 시인 한하운(1920~1975). 그의 또 다른 이름은 문둥이였다.
본명은 태영(泰永). 함경남도 함주에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1936년 17세의 나이에 한센병 진단을 받았다
중국 베이징대학 농학원을 졸업하고 귀국해 도청에 근무하며 양양한 미래를 시작하던 25세에 다시 악화되어 직장도 그만 두고 숨어들었다
이때 이름도 하운(何雲어찌 내 인생이 떠도는 구름이 되었느냐)으로 바꾸었다.  1946년 함흥학생사건에 연루되어 반동분자로 투옥되었다가 이듬해 월남했다
구걸을 하며 연명하다 명동거리에서 시를 파는 사람으로 유명해졌다

 

한하운

 

(해설)

사월이면 보리가 패기 시작한다

초록이 지천으로 팬 보리밭을 지날 적이면 보리피리가 불고 싶어진다
보리의 싹이 나오기 전의 보릿대를 꺾어 불면 피– 소리가 났다
보릿대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 손톱으로 작은 구멍을 내 요령껏 불면 피ㄹ 닐니리 소리가 나기도 했다
청보리밭의 소리이자 고향의 소리 피ㄹ 닐니리ㄹ 닐니리는 향수의 소리다.
1949년 《신천지》에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
신을 벗으면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가도 가도 천리먼 전라도길.
(〈전라도 길 소록도 가는 길에〉외 12편이 실리면서
불우의 시인‘ ‘천작(天作)의 죄수‘ ‘정처 없는 유리(遊離)의 가두(街頭)에서 방황하고
섰는 걸인으로 소개되었다.
〈보리피리〉를 읽다보면 말 그대로 천형(天刑)’을 짊어지고 살았던 그의 삶과 세월이 떠오른다
보리피리를 불며 가는 꽃 청산‘, ‘인환(인간의 세계)의 거리‘, ‘방랑의 기산하(많은 산과 들)’
그의 고향 함경도 함주에서부터 남쪽 끝 섬 소록도까지 이르는 과정을 상징하는 것만 같다
사월의 고향 들판에서 불었던 보리피리를 불며 그는 내내 그 멀고 먼 거리를 떠도는
구름처럼 흘러온 것이다
나는나는죽어서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푸른 들날러 다니며// 
푸른 노래푸른 울음울어 예으리// 
나는나는죽어서파랑새 되리“(〈파랑새〉)라고 노래하며.
 
시는 행간을, 행간의 여백을 읽는 일이다. 이 시는 신문사에 갔다가 즉석에서 써준 즉흥시다. 
한 편의 시에, 가곡이나 가요로 가장 많은 곡이 붙여진 시이기도 하다. 
그의 삶이 그토록 불우하고 파란만장하지 않았더라면, 
‘인환’이나 ‘기산하’ 같은 한자어를 제외한다면 동시라 해도 무방할 이 단순한 시가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았을까. 기운생동 창끝처럼 패는 새파란 보리가, 
지는 꽃처럼 문드러지는 붉은 살끝을 거느리고 있기에, 
피-ㄹ 닐니리 봄의 보리피리 소리가 한층 깊고 서럽다

(참고문헌)

『한국현대문학사탐방』(김용성현암사, 1984)
『한하운시감상』(박거영 해설인간사, 1959)
『나의 슬픈 반생기』(한하운인간사, 1957)

[네이버 지식백과한하운 [韓何雲]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일간『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81(조선일보 연재, 2008)
(『보리 피리』.인간사. 1955 :『한하운 시전집』인간사. 1956 )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편집인(편집부2000hans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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