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창시(83) 솟구쳐 오르기 2 (1995) 김승희(1952 ~)

애창시(83)

 

솟구쳐 오르기 2 (1995)                   김승희(1952 ~ )

상처의 용수철
그것이 우리를 날게 하지 않으면
상처의 용수철
그것이 우리를 솟구쳐 오르게 하지 않으면

파란 싹이 검은 땅에서 솟아오르는 것이나
무섭도록 붉은 황토밭 속에서 파아란 보리가
씩씩하게 솟아올라 봄바람에 출렁출렁 흔들리는 것이나
힘없는 개구리가 바위 밑에서
자그만 폭약처럼 튀어나가는 것이나
빨간 넝쿨장미가 아파아파 가시를 딛고
불타는 듯이 담벼락을 기어 올라가는 것이나

민들레가 엉엉 울며 시멘트 조각을 밀어내는
것이나
검은 나뭇가지 어느새 봄이 와
그렁그렁 눈물 같은 녹색의 바다를 일으키는 것이나

상처의 용수철이 없다면
삶은 무게에 짓뭉그러진 나비알
상처의 용수철이 없다면
존재는
무서운 사과 한 알의 원죄의 감금일 뿐
죄와 벌의 화농일 뿐

 

김승희
(시인 김승희 사진) (Google korea에서 발췌)

 

 

(시인 김승희)

저자 김승희는 1952년 광주에서 태어나 서강대 영문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73년〈경향신문〉신춘문예에 시〈그림 속의 물〉이, 1994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 소설〈산타페로 가는 사람〉이 당선되었다시집으로《태양미사》,《왼손을 위한 협주곡》,《미완성을 위한 연가》,《누가 나의 슬픔을 놀아주랴》,《어떻게 밖으로 나갈까》,《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빗자루를 타고 달리는 웃음》,《냄비는 둥둥》,《희망이 외롭다》등이 있고소설집《산타페로 가는 사람》장편《왼쪽 날개가 약간 무거운 새》가산문집으로《33세의 팡세》,《성냥 한 개피의 사랑》,4분의 1의 나와 4분의 3의 당신》등이 있다5회 소월시문학상과 제2회 고정희상을 수상했으며현재 서강대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승희

 

(해설)

김승희(56) 시인의 시를 읽노라면 시는 상처의 꽃이라는 말이 입에 돈다상처에서 피처럼 피어나는 꽃그것이 시라는 생각에 미친다우리는 가족·사랑·출산·질병·밥벌이·이념·사회를 떠나 살 수 없기에우리들 상처는 우리들 보금자리에서 생긴다매일매일이 상처투성이다상처로부터 솟구쳐 오르게 하는 용수철이 없다면 우리는 상처로 짓뭉그러져 있을 것이다우리 몸에 내장된 상처의 용수철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삶은 상처의 화농에 파묻혀 있을 것이다튕겨 오르는 힘솟구쳐 오르는 힘이 있기에 우리는 매일 새롭게 아침을 맞는다.

〈솟구쳐 오르기〉 연작시들을 통해 시인은 활활 타오르는 상처의 꽃에서 훨훨 날아가는 새의 날개의 푸드득 솟구쳐 오름“(시집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의 자서)을 찾아 어둡고 지리멸렬한 일상의 삶 위로 튀어 오른다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창을 장대로 삼아 장대 높이뛰기를 하듯 하늘 위로 솟구쳐 오르고(〈솟구쳐 오르기1), 상처의 힘을 깨닫기 위해 긴 머리에 성냥불을 당기고 싶어하고(〈솟구쳐 오르기3), 상처의 혼(), 아니 혼 속에 간직한 상처의 오케스트라에서 터져 나오는 황금 별들의 찬란한 음악을 듣기(〈솟구쳐 오르기10)도 한다상처를 비상의 날개로 삼아 날아 오르고자 한다그는 시인은 천형을 앓는 무당과 같은 존재라고 쓴 적이 있다무당이 고통의 칼날 위에서 춤추는 자라면상처의 작두를 타고 상처의 작두 위에서 공중부양을 하는 이가 시인일 것이다그 역시 고정희최승자김혜순과 더불어 1970년대 여성시의 새로운 솟구침을 주도한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으며시 쓰기 외에도 에세이평론·단편 소설동화논문번역 등 분출하는 글쓰기를 펼쳐 보이고 있다.

이 시에서도 상처에 내재한 자기갱생 및 자기정화의 힘을 노래하고 있다봄은 겨울에서 솟구쳐 오른다파란 싹파아란 보리개구리빨간 넝쿨장미민들레나뭇가지의 새 눈의 몸을 빌려 솟아오른다땅속이나 바위 밑에서부터담벼락을 타고 시멘트를 뚫고텅 빈 허공을 일으키며 기어오른다떨어져야 다시 튀어 오르는 공처럼 내내 얼어 있던 것들이넘어져야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처럼 내내 고통스러웠던 것들이당겨져야 다시 줄어드는 고무줄처럼 내내 아팠던 것들이오늘도 상처의 용수철을 타고 튕겨 오른다내일도 스카이콩콩을 타고 날아오른다아아 오오 우우기지개를 켜며 솟구쳐 오르는 탄성(彈性)의 탄성(歎聲소리 가득한 아침이다. “쓰러졌던 바로 그 자리에서바닥이여 바닥에서무거운 사슬들이짤랑짤랑 가벼운 빛의 음악이 되는 그날까지“(〈무거움 가벼움 솟아오름〉).

(참고문헌)

일간『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83(조선일보 연재, 2008)

편집인(편집부2000hans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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