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창시(85) 낙화(1946) 조지훈 (1920∼1968)

애창시(85)

 

낙화(1946)                             조지훈 (19201968)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조지훈
시인 조지훈 사진 (kbmeall.com에서 옮김))

 

 

(시인 조지훈)

본관은 한양(漢陽). 본명은 조동탁(趙東卓). 경상북도 영양(英陽출신아버지는 조헌영(趙憲泳)이며어머니는 전주 류씨(全州柳氏)이다. 4남매 중 둘째 아들이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로부터 한학을 배운 뒤 보통학교 3년을 수학하고 1941년 21세에 혜화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였다이에 앞서 20세에 안동 출신의 김난희(金蘭姬)와 혼인하였다. 1941년 오대산 월정사에서 불교전문강원 강사를 지냈고불경과 당시(唐詩)를 탐독하였다. 1942년에 조선어학회 『큰사전』 편찬위원이 되었으며, 1946년에 전국문필가협회와 청년문학가협회에 가입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1947년부터 고려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고, 6·25전쟁 때는 종군작가로 활약한 경력이 있다만년에는 시작(詩作)보다는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한국문화사대계(韓國文化史大系)』를 기획이 사업을 추진하였다.

작품 활동은 1939년 4월『문장(文章)』지에 시 「고풍의상(古風衣裳)」이 추천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이어 1939년 11월「승무(僧舞), 1940년에 「봉황수(鳳凰愁)」를 발표함으로써 추천이 완료되었다이 추천 작품들은 한국의 역사적 연면성(連綿性)을 의식하고 고전적인 미의 세계를 찬양한 내용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풍의상」에서는 전아한 한국의 여인상을 표현하였고「승무」에서는 승무의 동작과 분위기가 융합된 고전적인 경지를 노래하였다.

「봉황수」에서는 주권 상실의 슬픔과 민족의 역사적 연속성이 중단됨을 고지(告知)시키고 있다조지훈의 작품 경향은 『청록집(靑鹿集)(1946)·『풀잎단장(斷章)(1952)·『조지훈시선(趙芝薰詩選)(1956)의 작품들과 『역사앞에서』(1957)의 작품들로 대별된다.

박목월(朴木月박두진(朴斗鎭)과 더불어 공동으로 간행한 『청록집』의 시편들에서는 주로 민족의 역사적 맥락과 고전적인 전아한 미의 세계에 대한 찬양과 아울러 선취(禪趣)’의 세계를 노래하였다「고사(古寺) 1·「고사 2·「낙화(落花)」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 시편에 담긴 불교적 인간 의식은 사상적으로 심화되지 않았으나유교적 도덕주의의 격조 높은 자연 인식 및 삶의 융합을 보인다는 점에서 시문학사적 의의가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또한『풀잎단장』과 『조지훈시선』은 『청록집』에서 보인 전통지향적 시세계를 심화시켰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역사앞에서』는 일대 시적 전환을 보이고 있는데종래의 『청록집』 등에서 나타난 시세계와는 달리 현실에 대응하는 시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광복 당시의 격심한 사상적 분열 현상과 국토의 양분화 현실 및 6·25전쟁이라는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의 분노를 표현한 작품으로는 「역사앞에서」·「다부원(多富院)에서」·「패강무정(浿江無情)」 들이 있다.

특히「다부원에서」는 전쟁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시로서 동족상잔의 비극적 국면이 절실하게 나타나 있다기타 저서로는 시집 『여운(餘韻)(1964)과 수상록 『창에 기대어』(1956), 시론집 『시의 원리』(1959), 수필집 『시와 인생』(1959), 번역서 『채근담(菜根譚)(1959) 등이 있다.

 

조지훈

 

(해설)

이 작품에서 시인은 떨어지는 꽃을 보며 삶의 쓸쓸함을 노래한다.

꽃의 떨어짐에 대해 격정적 슬픔을 표시하기보다는 일단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한다 –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바람이 아니더라도 피어난 꽃은 언젠가 떨어지는 것그러므로 그는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질서를 인정하여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자연의 질서를 받아들이기로 마음에 작정하였다 해도 무엇인가가 지상으로부터 소멸한다는 일은 아무래도 서글픈 일이다. 2, 3연은 이러한 시인의 심정을 간접적인 방법으로 표현한다.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란 구절을 보건대 시간은 새벽이 가까와 올 무렵이다그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였던 것이다그의 마음을 대신하듯 밤새 울던 귀촉도의 울음 뒤에 고요함이 깔리자 먼 데의 산이 갑자기 가까와져 보인다.
이 쓸쓸한 시간에 그는 촛불을 꺼야 하리라고 생각한다여기에는 여러 가지 뜻이 함축되어 있다촛불을 끄는 행위는 꽃이 떨어지는 시간에 자기 자신 역시 어둠을 마주하여 있고자 하는 것이면서한편으로는 꽃 지는 그림자가 뜰에 어리는 것을 보려는 간절한 심정의 표현이기도 하다그리하여 불을 끄자 (이 행위는 작품에 생략되어 있다), 꽃 지는 그림자가 어리어 흰 미닫이 문이 은은히 붉게 비친다그것은 사라져 가는 꽃의 마지막 아름다움이자 그 쓸쓸함서글픔이 담긴 빛깔이다여기서는 지적인 이해보다 감각적인 느낌과 상상이 훨씬 중요하다.
이처럼 떨어지는 꽃을 노래한 뒤 그는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온다그는 세상을 피하여 묻혀 사는 이이다묻혀 사는 마음을 혹시 누구인가가 알지 않을까 그는 꺼려 한다그는 묻혀서 홀로 살았다그러나 사실은 홀로가 아니다그는 꽃과 더불어 살았다바로 이 때문에 그는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라고 하는 것이다세상을 피하여 홀로 사는 그에게 한 즐거움이었던 꽃이 떨어질 때 그는 자신의 삶에 가득한 외로움을 다시금 느끼며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의 기쁨과 목숨이 덧없음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그는 이 슬픔을 잘 정돈된 언어와 시적 균형으로 억제하지만그것은 짙은 우수의 빛을 띠면서 작품의 말들 사이에는 연기처럼 스며 나오고 있다.

1-3연 감정을 다스리면서 고요한 밤 분위기에 맞도록 꽃이 지는 현실을 거부하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4-6연 촛불을 끄고 밤을 새워 꽃이 지는 아름다움의 마지막을 함께하고 싶다.
7-9연 묻혀 사는 이의 때묻지 않은 고운 마음을 그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으며오로지 아름다움과 늘 같이하고픈 화자는 아침이 되면서 사라지는 아름다움에 대한 아쉬움삶의 덧없음에 깊은 비애를 느낀다.

(참고문헌)

『현대시연구』(국어국문학회 편국문학연구총서 9, 정음사, 1981)
『조지훈연구』(김종균 외고려대학교출판부, 1978)
『한국현대문학사탐방』(김용성국민서관, 1973)
『문학과 인간』(김동리백민문화사, 1948)

[네이버 지식백과조지훈 [趙芝薰]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일간『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85(조선일보 연재, 2008)
김희보 편저『韓國의 名詩』(종로서적, 1986)

편집인(편집부2000hans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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