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창시(93) 감나무(1996) 이재무(1958 ~)

애창시(93)

 

감나무(1996)                                이재무(1958 ~ )

감나무 저도 소식이 궁금한 것이다
그러기에 사립 쪽으로는 가지도 더 뻗고
가을이면 그렁그렁 매달아 놓은
붉은 눈물
바람결에 슬쩍 흔들려도 보는 것이다
저를 이곳에 뿌리박게 해놓고
주인은 삼십 년을 살다가
도망 기차를 탄 것이
그새 십오 년인데……
감나무 저도 안부가 그리운 것이다
그러기에 봄이면 새순도
담장 너머 쪽부터 내밀어 틔어보는 것이다

 

 이재무
시인 이재무 ( (google imege에서 발췌))

 

 

(약력)

충청남도 부여 출신

소속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94

민족예술인총연합 대의원 1993 ~ 1994

민족문학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 부위원장

 

 

(해설)

소설가 현기영의 발문을 빌려 말하자면좀 지랄 같은 성깔과 흰 이를 드러내고 씨익 웃는 개구쟁이의 웃음그리고 시적 허기증이라 할 만한 왕성한 창작 욕구가 가장 그답다고 한다그가 바로 이재무(50) 시인이다그의 시는 어렵지 않다고향과 유년에의 기억도시와 문명의 피로 등 자신의 삶 체험을 진솔하게 담아내기 때문이다그는 퇴고할 필요가 별로 없는 완전한 모습의 시가 초고부터 씌어진 경우 좋은 시가 많았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이 〈감나무〉야말로 단숨에 쓰여진 시임에 틀림없다.

고향을 버리고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감나무 한 그루쯤은 담고 산다흰 보석 같은 감꽃과 달착지근했던 그 꽃맛새파란 감잎과 툭 툭 떨어지던 풋감들이 만들어내는 그 그늘꽃보다 더 고왔던 붉은 감잎과 그 거름감과 곶감과 까치밥의 그 달콤한 맛…그것들이 있는 풍경이란 하나같이 정답고 포근하다이 고향 같은 은 도무지 어디서 비롯된 이름일까.

15년 동안을주인이 도망치듯 떠난 빈집에서 꽃을 내고 잎을 내고 감을 내며 홀로 고군분투하는 감나무 한 그루가 있는 풍경은 애틋하다성큼 들어설 주인을 마중이라도 하려는 듯 사립 쪽으로 가지를 내뻗고 있다연초록 새순도 담장 너머 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새순이 잎이 되고 그 잎이 질 때한 기다림을 다 살았을 때그렁그렁 붉은 눈물을 매달고 바람의 안부에나 귀기울이는 것이리라날렵하게 포착해낸 이 짧은 시의 여백에는 농촌의 붕괴와 이농 현상이 있고한 가족의 곡절 많은 삶이 있고녹록치 않았을 도시살이가 있고무작정의 세월이 있고 계절이 있고그리움과 기다림이 있고인정이 있고 섭리가 있다.

이런 감나무는 또 어떤가. “저물 무렵 밭둔덕에 외로이 서 있는늙은 감나무와 나란히 서서인생의 황혼을 억세게 갈무리하시는아부지의 등허리엔살아온 날의 높고 낮은 등고선이가파르게 펼쳐져 있다“(〈아부지〉). 이 감나무는 주인과 함께 늙어가며뻗어가는 가지들을 잘 갈무리하고 있다. “초겨울 인적 드문 숲속앙상한 가지에 매달려위태위태한 빨간 슬픔의 홍시하나의 마음으로 기다린다“(〈기다림〉). 이 감나무는 기다림을 완성시켜줄 큰 입 가진 임자를 기다리는 것이리라고향이란 이런 감나무처럼 애틋하게 기다려주는 곳이다고향에 대한 향수는 이런 감나무로 통하는 것이다.

새순이 돋았으니 감꽃마저 지고 나면감이 열리고 감잎이 물들 것이다그리고 까치밥 하나 오래 맺혀 있으리라고향 빈집에 남겨두고 온 저 감나무는 그렇게 삼십년을 알콩달콩 한 식구처럼 살았으니십오년에 또 십오년은 더피붙이처럼 그리워할 것이다속을 바짝바짝 태우며 그리 오래 기다렸던 감나무니 그 감은 또 오죽 달 것인가.

거짓말을 타전하다 – 안현미(91)

(참고자료)

일간『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93(조선일보 연재, 2008)
(『몸에 피는 꽃』.창작과비평사. 1996)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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