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준 명지대 석좌교수(전 문화재청장)의 2박3일 북한 방문기

유흥준 명지대 석좌교수(전 문화재청장)의 2박3일 북한 방문기


한가위 명절이 지나갔다연휴기간 유엔총회가 시작됐다

2차 미북 정상회담도 가시화 됐다

앞서 평양에서 열린 제3차 남북 정상회담(18~20)에 동행한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전문화재청장)의 북한 방문기를 싣는다

그는 한마디로 “가슴뭉클하고눈물이 맺히는 여정이었다” 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북한 방문 이틀째인 지난 19일 평양 시민들이 거리를 지나고 있다. 남자들은  ​                      ​인민복차림이 많았으나 여성들은 보다 자유롭고 화사해 졌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북한 방문 이틀째인 지난 19일 평양 시민들이 거리를 지나고 있다. 남자들은 ​인민복차림이 많았으나 여성들은 보다 자유롭고 화사해 졌다. [연합뉴스]

유홍준교수 23북한방문기

 

유홍준
유홍준

14호 버스에 동승한 문화체육인,젊은 연예인들 ‘대박!’ 감탄사 연발 남북 모두 젊은세대 감각 이해해야 화사하게 차려입은 여인들 휴대폰·장마당이 바꿔 놓은 거리 ‘자본’ 스며들면 더욱 가까워질까 잊을 수 없는 옥류관 평양냉면 김위원장 10여 분 먼저 나와 환대 미완결 북한 답사기 마치고 싶어 바흐의 음악같은 백두산 구름 한 점 없는 정상, 장엄한 천지 가슴이 뭉클 해지고 눈물도 고여

   꿈결같은  2박3일이었다. 역사적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으로 다녀온 것은 큰 영광이자 행운이었다. 특별수행원이란 특별한 임무가 주어진 것이 아니라 결혼식으로 치면 들러리이고 노래로 치면 백댄서같아서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할 뿐이다. 가라는대로 가고, 시키는대로 할 따름이었으나 이처럼 수동태로 움직인다는 것이 그렇게 행복할 줄 몰랐다. 특히나 휴대폰을 서울공항에 맡겨두고 왔기 때문에  2박3일간 완벽하게 모든 잡사로부터 벗어나는 해방을 누렸다.

우리가 평양순안공항에 도착한 것은 오전 10시 였다. 나는 14호버스에 배정받았다. 14호차라! 특별수행원의 마지막버스다. 각계를 망라할때면 으레 문화예술은 이처럼 마지막에 놓이는것이 관례다. 그러나 나는 이를 서열의 말석이 아니라 마침표라고 자부하고 있다. 우리의 14호차에는 대한체육회 이기홍회장, 차범근 축구감독, 현정화탁구감독, 박종아아이스하키선수, 안도현시인, 김형석작곡가, 최현우마술사, 가수알리·에일리·지코, 그리고 대학생기자이에스더가 동승했다.

 

나는 천성이 자유인이고 타고난 친화력이 있어서 구면이라고는 안도현시인 뿐이었지만 순식간에 14호차를 한식구로 버무려 놓았다체육계인사와는 ‘만나뵈어 반갑습니다라는 따뜻한 수인사만으로도 가까워질수 있었지만 젊은 가수들과 동질감을 얻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다행히 가수 알리가 ‘복면가왕에 팝콘소녀로 나와 황금마스크를 쓴프로를 본적이 있어서 이를 매개로나 이를 반꺾어야 또래가 되는그들과도 금방 교감을 이룰 수 있었다.

우리의 버스가 공항에서 출발하여 평양 시내로 향하는 순간 연도에는 꽃다발을 들고나온 환영 인파가 끝없이 이어졌다어른에서 학생까지곱게 차린 한복의 여인부터 인민복의 남성까지 목청껏 ‘평화통일을외치며 우리를 향하여 손을 흔들었다북한방문이 처음이라는 차범근감독은 열리지않는 차창에 손을대고 그들의 환영에 답하면서 내게 부끄럼 빛내며 “왜 이렇게 눈물이 나오는지 모르겠어요라며 고개를 돌린다이에 “이럴땐 참지말고 실컷 눈물을 흘리게 내버려 두세요라고 답하고나니 나도 눈물이 나왔다.

본래 운동선수들은 생각보다 감성이 여리어 사고가 철학적이다이에반해 연예인들은 감성이 밝고 낙천적인데가 있다젊은 가수들은 그저 ‘대박!’이라고 그들 특유의 감탄사를 발하고는 이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머릿속에서 가늠하는 것 같았다이번 특별수행단에 젊은 연예인들이 대거 참여한것은 통일의 과제를 우리 젊은세대에게 안겨주는데 큰 기여를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려호텔에 여장을 풀고 점심을 든 다음 14호차팀은 김정숙여사의 옥류아동병원 순방을 수행하게 됐다우리의 버스가 평양시내를 관통하면서 나는 차창밖으로 거리의 풍광을 유심히 살폈다나의 평양방문은이번이 네번째이다. 1997, 98년엔 중앙일보에 ‘나의북한문화유산답사기를 연재하기 위해 갔고, 2006년문화재청장시절엔 남북장관급 회담의 공식 수행원으로그리고 고구려 벽화고분의 유네스코 세계유산등재에 따른 후속조치를 위해 다녀왔다.


20년전, 처음 평양에 왔을때의 인상은 규격화된 잿빛 도시였다. 평양시민들의 옷차림과 표정도 솔직히 말해서 그런 분위기였다. 10년 전에도 사실 그런 인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본 평양은 대단히 밝았다. 고층건물이 전에없이 많이 들어섰고, 건물의 외벽을 연분홍빛, 또는 보랏빛으로 맑게 단장하기도 했으며 곡선미를 살린 멋진 건물도 많이 들어섰다. 건물보다 내게 더 눈길이 가는것은 북한사람들의 일상생활모습, 에브리바디(everybody)의에브리데이라이프(everyday life)였다.

 

    거리엔 인민복, 교복차림이 여전히 많았지만 그 사이사이에는 화사하게 차려입은 여인, 휴대폰을 보면서걸어가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그들의 걸음걸음에는 제도화된 틀에서 벗어난 자유로움도 느껴졌다. 북한에 휴대폰이 570만 대 보급됐고, 장마당이 460 곳 설치됐고, 성과급제도가 도입되면서 일어난 변화라는것이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자본’의생리가북한사회에 그렇게 스며들고 이들이 ‘돈’이라는 지독한 바이러스에 면역이 생길때 우리와 생활감각이 좀 더 가까워질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 자랑하는 의료시설인 옥류아동병원에 도착하여 김정숙여사를 기다리는데 이설주여사가 먼저와현관앞에서서 영접할 차비를 하고 있었다. 근 10분간을 그렇게 밖에서 기다렸다. 의전을 보면 상대방의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는데 이번 정상회담에서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자세를 유지했다.

또 우리는 ‘김일성장군의노래’를 작곡한 김원균을 기리며 세운음악종합대학을 방문했고, 이어 평양대극장에서 환영공연도 관람했다. 공연은 지난번 평창겨울올림픽때 장충동국립극장에서 보여준무대와 비슷했는데 우리를 배려하여 ‘아침이슬’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같은 남쪽노래도 그네들의창 법으로 불러주었다.

삼지연에서천지로가는길의이깔나무숲길. [사진유홍준교수]
삼지연에서천지로가는길의이깔나무숲길. [사진유홍준교수]

 


삼지연에서천지로가는길의이깔나무숲길. [사진유홍준교수]

그리고 목란관에서 환영만찬이 열렸다. 드디어 14호차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자리이다. 북한 관현악단의은은한 선율속에서 식사가 끝나갈 무렵 우리의 무대가 펼쳐졌다. 먼저 에일리가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를 열창했다. 북측인사들은 그저 신기한듯 경청했다. 그리고 래퍼지코의 ‘아티스트’에서는 어리둥절 해 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알리의 ‘365일’과 김형석의 피아노연주 ‘아리랑’에 와서야 비로소 감동하는 빛이 보였다. 그것도 감흥이 아니라 이해였던 것 같다.​이점은 나이많은 우리측 수행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 젊은세대의 감각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핵 문제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주탁(헤드테이블)에서는 요술사 최현우가 움직일때마다 웃음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내일 원만한 공동선언문이 나올것만 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이튿날 우리는 오전에 여사님을 수행하여 만경대학생 소년궁전을 참관하고 점심으로 평양냉면을 먹을 옥류관으로 갔다. 옥류관에서 주탁은 특별수행원인 임동원, 백낙청, 홍석현, 장상, 차범근, 나 그리고 북측인사로는 김영철통전부장과 이수용당외교부장이 배석했다.

두 정상을 맞이하기 위해 일행들이 아래층으로 내려갔는데 김정은위원장이 10여 분 일찍와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문대통령은 공동성명문 발표 때문에 예정보다 5분정도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김위원장은 무려약 15분간이나 계속 현관 밖에서서 기다렸다.

자리에 앉으면서 이설주여사는 곁에있는 나에게 서울의 평양냉면에 대해 물었고, 김정은위원장은 백두산들쭉술을 화제로 삼았다.
나는 이번에 남측에서 선물한 높이가 6.6m, 폭 4m에달하는 김정호 ‘대동여지도’의 복제본에 대해 설명 해 드렸다.
그리고 나서 내가 함흥에 가보지 못해 북한답사기를 완결짓지 못하고 있다고 말씀 드리고 추사김정희가 북청으로 유배가면서 만세교를 넘어가던 이야기를 하자 문대통령은 집안어른들에게 들은 원산의 군자교 얘기로 받았다. 이어 내가 길주의 북관대첩비 이야기를 하자 김위원장이 신기해 하며 듣는것을 보고는 문대통령은 나를 문화유산 전문가라고 다시 소개 해 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만수대창작사를 방문했다여기서 나는 기념으로 ‘자작나무 숲을 그린 유화한 점을 샀다저녁에 있은  5·1경기장의 집단체조는 상상을 초월하는 환상적인 매스게임이었다그리고 문대통령은 15만 평양시민들앞에서 “우리는 5000년을 함께 살아왔고, 70년을 헤어져 살고 있습니다라는 역사적인 명연설을 했다나도 모르게 가슴이 울렁거리고 눈물이 흘렀다나는 이것이 제3차 남북정상회담의 하이라이트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튿날 우리는 알려진대로 백두산으로 향했다새벽 5시에 호텔에서 출발하니 연도에 또 다시 수많은 인파가 어둠속에서 꽃을 흔들며 환송 해 주었다나는 14호차식구들에게 백두산의 장엄함을 말하여금강산이 모차르트라면 백두산은 바흐의 음악같다고 했다가문비나무·이깔나무 숲이 한없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황량한 고원으로 들어서고 마침내 정상에 오르면 발 아래로 새파란 천지 못이 장대하게 펼쳐지는 장엄함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날따라 백두산에는 구름 한 점 없었고 바람도 불지 않았다아마도 단군갑자 이래 가장 맑은 천지에서 남과북의 두정상이 맞잡은 손을 높이 치켜 들었을때 가슴이 뭉클 해 지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고였다꿈결같은여정이었다.  

유홍준명지대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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