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에 대한 교훈

후세에 대한 교훈


경기도 파주에 있는 반구정은 방촌황희 정승이 87세에 관직에서 물러나 죽기 전 3년동안 자연을 벗 삼아 여생을 보낸 곳으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절재공 김종서는 곧고 강직한 성품으로 16세에 문과에 등재 하였으며 용맹이 호랑이 같은 성품이었다.

어느날 중신 회의석상에서 몸을 삐딱하게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 모습이 모두의 눈에 거슬렸지만 아무도 말을 못하고 있는데 황희 정승이 아랫사람을 불러서 말했다

절재가 앉아있는 모습이 아마도 의자가 삐뚤어진 것 같으니 고처 드려라 고하니 그 말에 김종서는 깜짝 놀라며 자세를 바로 고쳐 앉았다는 일화가 있다.

황희 정승이 가끔씩 김종서에게 잘못을 지적하자 한 중신이 황희 정승에게 대감은 어찌 절재에게만 엄격하십니까 라고 물으니

방촌이 말하기를 절재는 앞으로 나라에 큰 일을 하실 분이기 때문에 그 훌륭한 능력이 작은 결점으로 그릇될까 봐 염려가 되어서 그러는 것이오 라고 하였다.

황희 정승은 이미 자기는 늙어서 떠나야 할 것이니 다음 세대를 미리 내다 본 것이다.

 

절재공 김종서는 조선초기 16세에 문과급제 하여 문,무를 겸비하였으며 함길도 도관찰사로 북방의 여진족을 막아내고 6진을 개척하였으며 우의정과 좌의정의 반열에 올랐으며.

세종대왕이 말년에 세자였던 맏아들 문종이 병약하여 오래 살지 못하고 손자인 단종이

어린 나이에 보위에 오르게 될 것을 예감하고. 수양대군이 성격상 패륜을 저지를 것을

걱정하여 신임하던 김종서에게 손자인 단종을 꼭 잘 지켜 줄 것을 부탁하였고

문종의 고명대신으로 단종을 보위하다가 패륜아인 수양대군의 계유정난 때 그의 아들 두명과 함께 피화를 당한 충신이다.

세조 수양은 그 여죄로 평생을 피부병(문등병)과 자식들이 요절하고 조선조 500년 동안 왕위를 그의 자손들로이었으나 적자(嫡子)로 이은 것은 단 7명에 불과하다.

황희 정승의 고언처럼 때로는 귀에 거슬리는 말이 스승이고 보약이 될 수 있으며.

사람이란 떠날 때를 알아야 하며, 돌아서서 가는 뒷모습이 아름다워 보일 때 그때쯤 떠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작별이다.

편집인(편집부 2000hans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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