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102 요당리성지

P 102 요당리성지

1. 주소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요당길 155

전화 : 031-353-9725, 팩스 : 031-353-9785

http://www.yodangshrine.kr

요당리성지

2. 미사 시간

오전 11시 (월요일 미사 없음)

요당리성지

3. 역사

수원 고을의 ‘양간’지역에 언제 복음이 전파되었는지 현재까지 명확히 알려진 사실은 없다. 다만 ‘양간’을 포함한 수원 고을에 복음이 전파된 것은 1801년 신유박해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유박해 이전 초기교회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관찬사료<사학징의에 의하면 한양 도저동에 거하던 마병 이지번의 장인인 이지성이라는 신자가 1801년 3월 당시 수원에 살고 있었으며, 사위인 이지번에게 천주교 서적을 주면서 신앙을 권면한 것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사실과 함께 한국천주교회 창립의 주역인 이승훈(베드로)이 1790년경 평택현감으로 부임하여 관아에서 30리쯤 떨어진 대추리에 가서 전교하였다는 사실이 구전되고 있으므로, 평택과 가까운 수원 고을에도 1790년대부터 복음이 전파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다가 19세기 초반부터 신유박해로 인해 서울과 충청도 내포 등지의 신자들이 수로와 육로를 따라 그동안 신자들이 살지 않던 경기도의 산간 내륙지역으로 피난하면서 수원 고을 내에도 신앙의 공동체가 형성될 여지가 많아졌다. 그러나 수직적인 위계질서와 성리학적 명분론에 입각한 척사의 움직임이 어느 지역보다도 강했던 수원 고을 내에서는 오가작통법이 엄격하게 실시되어 관가는 물론 일반 향촌사회의 문중(門中)이나 가문의 차원에서도 자발적으로 천주교를 배척하는 분위기가 일어나 1817년 감탕개에 살던 이용빈이란 신자는 전교를 하다가 친척들에 의해서 살해당하기도 했다. 이같은 일반 향촌사회의 척사적 분위기는 한동안 지속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1830년대를 전후한 시점부터 수원 고을 내에도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1833년 11월 서울의 형조에서 순교한 황석지(일명 사윤, 베드로)는 오래 전부터 고향인 수원 샘골에서 전 가족이 함께 천주교에 입교하여 계명을 지키고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황사윤이 살았던 샘골은 당시의 행정구역상 화성유수부 현암면 천곡리로 또는 화성유수부 양간면 신왕동, 속칭 샘골, 생이로 불림)으로 추정된다.

(옮긴 곳 – 요당리 성지)

요당리성지

4. 교통

버스 : 송탄역 – H104 – 요당성지 (67분)

승용차 : 발안IC에서 인중방향 고잔저수지 건너편

청북IC에서 발안방향 고잔저수지 건너편

 
요당리성지

5. 성지순레 도장

소성당 입구

 
요당리성지

6. 약도

요당리성지
  • 편집인(편집부2000hanso@hanmail.net)

Recent Articles

spot_img

Related Sto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