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34 절두산 순교 성지
1. 주소 : 서울시 마포구 토정로 6(합정동 06-1)
전화 : 02-3142-4434 팩스 : 02-335-0213
2. 미사시간
미사시간 : 오전 10시, 오후 3시 (월요일 3시 미사 없음)
박물관 이용 : 오전 9시30분~오후 5시(월요일 휴관)
(피정, 식사가능 – 예약 필요함)
3. 역사
병인박해.
1864년 1월 철종의 사망과 함께 고종이 왕위에 오르지만 12세의 고종이 정사를 돌보기는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대왕대비 조씨와 고종의 부친 형성 대응군 이하응에게 모든 실권이 넘어가게 되었고, 대원군은 섭정 시기 동안 서양의 침략에 대해서는 위증척사적 입장에서 강력한 대응 정책으로 일관하였으나, 1860년 북경 조약으로 연해주지역을 차지한 러시아가 남하정책을 펴며 조선과의 통상을 강요하자 위협을 느낀 그는 프랑스를 통해 러시아 위협을 물리치고자 선교사들과 접촉하려 하였다.
러시아 세력을 물리칠 수 있다면 종교의 자유를 주겠다는 대응군의 제외에도 불구하고 베른의 주교는 러시아 사람들과는 종교가 다르기 때문에 그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기본 입장을 전하였다. 1865년 러시아인들의 새로운 통상요구와 더불어, 당시 신자들이 조선에 와 있는 서양 주교들을 통해 영국, 프랑스와 동맹을 맺자는 방아책(러시아를 막는 방책)을 건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서양인들을 사형에 처하고 있다는 조선 사신의 보고와 대신들의 압박, 그리고 선교사들이 정치적으로 연관이 될 것을 두려워한 대원군은 주교들과의 면담을 미루었다.
또는 러시아인들의 위협이 누그러지고 있는 시기까지 겹쳤을 것으로 생각한다.
결국 1866년 2월 19일 최형 등의 체포되고 2월 13일.얘는 베른의 조교와 홍공조합 체포되면서 병인박해가 시작되었고, 한강을 피로 씻겠다고 하며 많은 천주교인들의 목을 잘라 죽인 이곳의 지명이 절두산으로 부르게 되었다. 1966년 병인박해 순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기념관을 건촉하였고, 27위의 순교 성인과 무명 순교자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4. 교통
지하철 2호선, 6호선 합정역 7번에서 도보 10분
A방향 : 합정역 방향에서 진입 시 강변북로 한남대교 방향으로 진입하여 합정역 표지, 절두산순교기념과 표지를 보고 진입
B방향 : 강변북로 한마대교 방향에서 진입 시 서강대교를 지나 질두선순교기념관 표지를 보고 잠두본지하차도 전 오른쪽 길로 진입
C방향 : 강변북로 일산방향에서 진입시 양화대교에서 합정역 표지를 보고 진입 후 다시 절두산순교기념관 표지를 보고 진입
D방향 : 양화대교를 건너는 경우 합정로타리를 지나 P턴이나 U턴을 한 후 A방향과 동일하게 진입
5. 성지순례도장
시성기념교육관 안
6. 약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