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창시(9)
한 잎의 여자 <1978년>오규원(1941 ~ 2007)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풀푸레 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룰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병신(病身) 같은 여자,
시집(詩集) 같은 여자,
그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시인 오규원)
오규원은 1941년 경상남도 밀양군 삼랑진읍 용전리에서 6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난다. 본명은 규옥(圭沃)이고, ‘규원’은 필명이다. 정미소와 과수원을 소유하고 있던 아버지 덕분에 전형적인 농촌 마을인 고향에서 그는 꽤 유족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러나 국민학교 시절에 겪은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한국전쟁은 그의 삶에 원체험으로 작용한다. 시인은 “나의 유년은 열두 살로 끝”났으며, “나의 유년이 끝남과 동시에 나는 도시로 떠돌기” 시작했다고 털어놓는다. 부산중학교 1학년 때 누이 집에서 기숙하고, 2학년 때 대학생과 고등학생이던 다른 형제들과 자취를 한 그는 이어 숙부 집에서 얹혀 지낸다.
이 시절 그는 대본 가게와 일본 유학생 출신인 숙부의 장서를 통해 책읽기에 재미를 붙이고, 시 비슷한 것을 흉내 내기도 한다. 그는 부산중학교를 졸업한 뒤 부산사범학교에 진학한다. 호적상으로 열여섯 살이 되던 해(그는 호적에 1944년으로 올라 있다)에 사범학교를 졸업한 그는 부산 사상국민학교 교사로 부임한다. 시인은 “터무니없는 어린 나이에 사령장을 들고 국민학교 교사로 부임하러 간 나의 눈에, 다른 어느 것보다 그 학교의 화단에서 처음 본, 가득했던 달맞이꽃을 신기해하며, 한참 바라보고서야 현관을 들어설 만큼 병들어 있었다.”라고 어느 글에서 밝힌 바 있다. 그는 교장, 교감, 장학사와 부딪치며 학교를 옮겨 다닐 만큼 어린 나이에 시작한 교사 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교편을 잡은 다음해 그는 동아대 법학과에 들어가 공부를 계속한다.
1964년 신춘문예에 응모했다가 떨어진 오규원은 습작품을 정리해 <현대문학>에 보낸다. 이를 좋게 읽은 김현승에 의해 그는 1965년에 <현대문학>의 추천을 받게 된다. 그는 같은 해 5월 군에 입대해 논산에서 신병 훈련을 마치고 대구군의학교에서 교육을 받던 중에 초회 추천작인 ‘겨울 나그네’가 실린 <현대문학> 7월호를 접하게 된다.
1967년 ‘우계의 시’로 2회 추천을 받은 그는 1968년 10월 ‘몇 개의 현상’으로 추천 과정을 마치며 “감성과 지성을 갖춘 신인”으로 문단에 나온다. 그는 부산 3육군병원의 수술실, 비뇨기과, 정형외과를 거쳐 진료 원장실에서 의무 행정을 담당한 끝에 1967년에 군에서 제대한다. 1969년 2월 동아대 법학과를 졸업한 그는 <한림출판사> 편집부에서 근무하며 비로소 생활의 안정을 찾는다.
1971년 시인은 “서울특별시 개봉동으로 편입되지 못한 경기도 시흥군 서면 광명리”로 이사한다. 거주지를 옮기는 것과 거의 같은 시기에 그는 태평양화학 홍보실로 직장을 옮긴다. 1973년에 들어 그의 두 번째 시집 [순례]가 나온다. 이 시집의 표지는 김승옥이 맡고, 발문은 김현이 쓴다. 이 무렵부터 1975년에 <민음사>의 ‘오늘의 시인 총서’로 내놓는 [사랑의 기교(技巧)]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것은 언어에 대한 자의식, 바꿔 말해 언어에 대한 집착이다.
1979년 시인은 한동안 “밥을 벌어먹고 있던” 직장 ‘태평양화학’을 그만두고 출판사 <문장>을 차린다. 이 출판사를 경영하며 시인은 자신이 사사한 [김춘수 전집]과 [이상 전집] 등을 비롯해 50여 권의 단행본을 펴낸다. 1983년에 들어 시인은 출판사를 그만두고 서울예술전문대학 문예창작과 전임교수로 자리를 옮긴다. 이 사이 그는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1978), [이 땅에 씌어지는 서정시](1981) 등의 시집을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낸다.
오규원의 다섯 번째 시집인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에 실린 작품들은 시인 스스로 말하고 있듯이 상품 광고 문안, 즉 “상품적 메시지를 그대로 시 속에 옮기는” 관념 해체, 형식 파괴 등을 실험한 시들이다. 그 시편들은 편안하고 아름다운 서정시를 즐기려는 독자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며 의식을 아주 불편하게 만든다. 성급한 사람들은 도대체 이런 게 시라면 세상에 시 아닌 것이 어디 있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마저 읽기도 전에 시집을 집어던질지도 모를 일이다. 상품 광고, 텔레비전의 광고, 영화 광고, 상표, 상품 포장 안내문 등을 그대로 시 속에 옮기는 것을 시인은 “방법적 인용” 또는 “인용적 묘사”라고 말한다. 과연 이런 파격적 시작 행위의 뒤에 숨어 있는 시인의 의도는 무엇일까?
오규원의 시는 세속 사회의 세속화에 대한 시의 방법적 대응이라는 면에서 더할 수 없이 날카롭고 신랄한 풍자와 야유의 독기를 품고 있다. 왜냐하면 시인의 판단으로는 이런 흐름이 우리 삶의 진정성을 훼손하고, 기만하며, 인간의 가치와 의미를 물신적 차원으로 끌어내리는 까닭이다. 바꿔 말해 허구의 욕망을 창출해 행복의 신기루를 보여주고(‘MIMI HOUSE’), 암시적인 성적 자극을 통해 상품 광고의 소구력을 드높이기(‘롯데 코코아 파이 C. F.’) 때문이다. 이런 시는 모두 비진정한 가치 체계의 지배를 받는 세속 사회에서의 인간의 물질주의적 행복과 욕망의 헛된 추구, 그 허구성과 기만성을 폭로한다.
오규원은 1990년대에 들어와서 세 권의 시집을 더 펴낸다. [사랑의 감옥](1991), [길, 골목, 호텔 그리고 강물 소리](1994), [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1999)가 그것이다. 그런데 [길, 골목, 호텔, 강물 소리]에서부터, 자본주의 세속 사회의 속물성과 타락에 대한 역겨움을 풍자와 비판의 언어로 난도질하는 것을 능기로 삼아온 시인은 작은 변화의 낌새를 보여준다. 시집의 제목으로 드러나 있는 길, 골목, 호텔 등은 자본주의 세속 사회의 실상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도시의 표상물들이다. 시인의 눈길과 관심은 여전히 도시에 머물러 있지만, 한편으로 귀는 ‘강물 소리’를 쫓아간다. 이는 오랫동안 관념적으로 세상을 보는 데 익숙해져 있던 시인이 인간 중심적 사고의 습성인 자의적인 사고의 틀을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발견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낌새다.
시인은 1991년께 만성 폐쇄성 폐질환 진단을 받고 거처를 도시에서 자연과 한결 가까이할 수 있는 지방으로 옮기는데, 어쩌면 이런 환경의 변화와 시 세계의 변화가 맞물려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그는 날(生)이미지라는 생생한 화두를 남겨두고 2007년 2월 2일 조용히 숨을 거둔다.
[해설]
오규원(1941~2007) 시인은, 보통 사람이 호흡하는 산소의 20%밖에 호흡하지 못하는 ‘만성폐쇄성폐질환’을 앓다 작년 겨울에 타계했다. 임종 직전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라는 마지막 문장을 손가락으로 제자 손바닥에 써서 남겼다. 나는 이 시를 대학교 1학년 때의 여름, 한 남학생이 보낸 대학학보의 주소 띠지 속에서 처음 읽었다.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 여자에게 이 시를 옮겨 나르곤 했던가. 이 시는 시집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1978)에 실린 작품이다. 그러나 시집 ‘사랑의 감옥’(1991)에 3편의 연작시 중 1편으로 다시 실렸다. ‘언어는 추억에 걸려 있는 18세기형 모자’라는 부제가 첨가되었고, 2연의 끝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와 3연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가 바뀌었다. 부제를 첨가하여 ‘여자’는 ‘언어’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는 것을,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를 뒤로 배치하여 여자나 언어 모두 소유할 수 없는 존재임을 강조하였다. 나무껍질을 벗겨 물에 담그면 물빛이 푸르스름해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물푸레, 이 시 덕분에 물푸레나무와 그 잎이 보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커다란 나무에 비해 여릿하고 포릇하고 정말 ‘쬐그만’ 둥근 잎이었다. 천생 ‘여자’를 닮은, 이를테면 눈물 하면 떠오르는 글썽임이라든가, 슬픔 하면 떠오르는 비릿함이라든가. 병신 하면 떠오르는 어리숙함이라든가, 시집 하면 떠오르는 아련함이라든가…. 그런 ‘여자’를 반복해 나열하면 할수록, 묘사하면 할수록 ‘여자’의 실체는 사라지고 ‘여자’는 신비의 옷을 입는다. 세상의 절반이 여자다. 물푸레나무에 달린 ‘쬐그만’ 잎처럼 하고많은 여자와 ‘여자’라는 보통명사를 이토록 입에 척척 달라붙도록, 혀에 휘휘 휘감기도록 구체화시켜 놓고 있다니! 여자는 남자의 ‘여자’다. 남자의 엄마이고 누이이고 애인이고 아내이고 딸이다. 남자의 과거이고 미래이다. 남자의 부재이자 심연이고, 선물이자 폭력이다. 그러니 시작이고 끝이다. 그런 여자를 어찌 정의할 수 있으랴. 모두 가지지만 결코 가질 수 없는 그런 한 ‘여자’를 누가 가졌다 하는가.
[참고문헌]
– 오규원 [吳圭原] – 관습적 이해에 반기를 드는 날 이미지의 시
– 나는 문학이다, 2009. 9. 9., 나무이야기 – 일간[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