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158 배티 성지

P 158 배티 성지

1. 주소

충북 진천군 백곡면 배티로 663-13
전화 : 043-533-5710, 팩스 : 043-533-5721
http://www.baeti.org

2. 미사 시간

주일, 화~토 :11:00
감사의 밤 : 셋째 토(18:30 ~ 22:30)
박물관 관람 : 10:00 ~ 17:00

3. 역사

배티성지는 안성 칠장산에서 시작하여 태안반도 지령산으로 이어지는 금북정맥의 서운산(547m) 자락에 위치해 있으며, 백곡천이 시작되는 배티고개 아래에 있습니다. 조선 후기까지 충청도 진천현 백곡면에 속해 있던 이곳은 예로부터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던 오지인 데다가 충청좌도와 우도, 경기도의 접경에 위치하고 있어 박해를 피해 이곳저곳을 떠돌던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살기에는 아주 적당한 곳이었습니다.

이곳 배티 일대의 산간지대로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들기 시작한 것은 1801년의 신유박해 이후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후 박해가 계속되면서 신자 수는 점차 늘어나게 되었고 1830년대 초에 와서는 믿음살이를 영위하는 신자들이 거주하는 안전하고 훌륭한 교우촌들이 산재하게 되었습니다. 1837년 5월에는 모방(나 베드로) 성인 신부님이 배티 교우촌을 공소로 설정하였습니다.

1850년에는 다블뤼(안 안토니오) 성인 신부님(1857년에 주교 서품)이 조선대목구 신학교를 설립한 뒤 배티 교우촌에 두 칸짜리 초가집을 매입하여 학교 건물로 사용하였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에 이어 배티 교우촌을 방문한 사제는 메스트르(이 요셉) 신부님과 페롱(권 스타니슬라오) 신부님이었습니다. 특히 순교자 프티니콜라(박 미카엘) 신부님은 1858년 10월부터 배티 교우촌을 자신의 사목 활동 거점으로 정하고 이곳에 있는 초가집을 성당 겸 사제관으로 삼았습니다. 다블뤼 주교님이 배티 교우촌에 와서 견진성사를 집전한 것도 이때였습니다

1866년 병인박해가 발생한 뒤에는 경상도 지역을 순방하던 칼래(강 니콜라오) 신부님이 배티 이웃의 삼박골 교우촌(현 백곡면 용덕리)으로 피신해 와서 보름 남짓 머물며 미사를 봉헌하고 성사를 집전하다가 소학골(현 천안시 북면 납안리)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기록상으로 확인되는 순교자만 34명입니다. 그중에서 배티 출신의 장 토마스 등 8명은 지난 2014년 8월 16일에 시복되었습니다.

박해가 끝난 뒤 배티 마을은 다시 교우촌으로 재건되었고, 1888년에는 공소로 재설정되었습니다. 1893년에는 이곳에 교리학교가 설립되었으며, 이웃 용진골(현 백곡면 용덕리)에서는 윤의병(바오로) 신부가 성소의 꿈을 키웠습니다. 또 그때부터 이곳 천주학쟁이 묘지기들은 무명 순교자들의 무덤을 돌보면서 신앙선조들의 참신앙을 이어받는데 노력해 왔습니다. 배티 교우촌이 성지로 가꾸어지기 시작한 것은 다시 오랜 세윌이 지난 1977년부터였습니다.

(배티성지 험페이지에서 옮김)

4. 교통

대중교통 : 진천종합터미널 – 320번 –배티성지 (42분)
승용차 : 안성맞춤IC- 16Km – 배티 성지 (22분)

5. 성지순레 도장

기념성당 입구

6. 약도

  • 편집인(편집부2000hans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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